아이는 매 순간 성장하고 있다.
아이와의 대화 2
아이들은 매 순간 에너지를 쌓아 끊임없이 성장한다. 특히 세 돌까지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성장이 일어나는 시기라 어제 못한 것을 오늘 갑자기 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나 예상치도 못한 말을 하기도 해서 놀라는 순간들이 많다.
그날은 사랑이와 봄이, 신랑이 함께 침대에서 놀고 있었다. 안에서 까꿍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정말 즐겁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봄이가 거실로 나왔다. 유유히 걸어 나온 봄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전면 책장 위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젖병을 씻고 있던 터라 신랑과 사랑이도 곧 따라 나오겠지 싶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윽고 사랑이와 신랑이 나와서는 신랑은 화장실 다녀온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고, 사랑이는 봄이 옆에 걸터앉아서 말도 못 알아듣는 봄이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봄아, 침대방에 가서 놀자. 응? 침대방에 가자."
사랑이는 침대에서 같이 노는 게 정말 재미있었나 보다. 말을 못 알아듣는 봄이는 오빠가 옆에 와서 종알거리며 애원해도 자신만의 놀이 세계에 빠져있었다. 둘이 어쩌나 힐끔거리며 보는데 사랑이의 부탁이 너무 애처로워서 안 되겠다 싶어 젖병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로 갔다. 계속 졸라도 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사랑이의 얼굴이 이내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랑아, 표정이 왜 그래? 속상해?"
"응."
"왜 속상해?"
"존중하기 싫어서..."
아이코, 너무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봄이가 같이 안 놀아서라든가, 봄이가 안방에서 나가버려서라든가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는데 너무나 의외의 말이었다.
봄이와 같이 놀고 싶은 사랑이와, 아직 너무 어려서 말을 못 알아듣는 봄이는 종종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다. 사랑이는 이게 하고 싶은데, 봄이는 아무 관심이 없다. 여러 번 말해도 봄이가 반응이 없으면 사랑이는 끝내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길래 한 번은 사랑이를 붙잡고 얘기를 했다.
"사랑아, 다른 사람이랑 함께 놀고 싶을 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기분을 존중해줘야 해."
(사실 이 말을 하면서도 세 살짜리 애한테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존중, 뭔데?"
"음..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기분을 이해하는 거야. 사랑이가 봄이랑 놀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봄이는 지금 다른 놀이가 하고 싶대.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게 존중이야.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과 놀 때 사랑이는 자동차 놀이 하고 싶은데 친구는 동물 놀이 하고 싶을 수 있어. 그럴 때 친구한테 억지로 자동차 놀이 하자고 하면 그건 존중하지 않는 거야. 반대로 네가 자동차 놀이 하고 싶은데 친구가 동물 놀이하자고 소리 지르면 너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 "
"그래 그래서 다른 사람을 존중해줘야 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세 살 아이에게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아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니 계속 그래도 소리 지를 거라는 둥, 봄이는 나쁘다는 둥 투덜거렸다. 그래도 계속 얘기해 주다 보면 언젠가는 어렴풋이나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뒤로도 몇 번 더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그때마다 "사랑이가 봄이랑 놀고 싶은데 봄이가 그렇지 않아서 속상하구나. 나중에 봄이가 말을 알아들을 때가 오면 같이 놀 수 있을 거야."라고 마음은 읽어주었다. 그래도 사랑이는 속상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는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잦았다.
그날은 전과 비슷한 상황에서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계속 같이 놀자고 하고 싶지만 그러자니 엄마랑 얘기했던 게 맘에 걸리고... 그렇게 소리도 지르지 않고 악도 쓰지 않고 내게 존중하기 싫어서 속상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랑아, 랑이가 많이 속상했구나. 그런데 봄이는 이 놀이가 더 재미있대."
그때 화장실에 다녀온 신랑이 사랑이와 나의 대화를 듣더니 사랑이에게 얘기했다.
"사랑아, 존중하는 거 진짜 어려운 거야. 아빠도 잘 못할 때 많아. "
나도 거들었다.
"맞아, 사랑아. 이 순간에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정말 멋있는 거야. 대단한 거야. "
엄마와 아빠의 말에 기분이 풀렸는지 랑이는 금세 웃으며 타요 자동차를 타고 옆방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날의 상황이 끝이 났다.
사랑이가 존중이라는 것의 의미를 이해했을 리는 없다. 다만 비슷한 상황 속에서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 소리를 지르기만 하던 아이가, 어쩌다 한 번이었을지라도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존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이다. 조금 더 자라면 자기 마음 외에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해야 한다는 걸 조금씩 제대로 받아들이게 되겠지.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들을 기록하며, 지난 3년의 시간이 결코 한 순간도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마음껏 사랑하고 또 표현하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그 시간들이, 그 쉽지 않았던 순간순간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으로 피어나는구나 싶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더 자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려와 존중을 가르치려면 나부터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할 테니.
아, 앞으로의 삶의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무게가 버겁지만은 않다. 책임의 무게만큼 행복의 무게도 묵직해졌을 것임으로!
함께 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