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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1. 2020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보인다.

울엄마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내 삶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장기든 단기든, 계획적인 여행이든 무계획의 여행이든 여기저기로 자주 떠돌다 보니 주말이나 쉬는 날에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카페에 앉아 종일 조잘조잘 하는 게 취미였고, 술자리도 좋아해서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일도 잦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요가에 재미를 붙여서 한동안 요가도 참 열심히 했고, 매일 일기 쓰기를 2년쯤 실천하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삶의 모습이 조금 달라지긴 했으나, 크게 변화한 것은 없었다. 신랑은 나의 취미, 취향을 적극 존중하는 사람이라 본인이 내키지 않는 여행도 잘 따라다녀 주었고,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것 또한 언제든 편하게 해주었다. 요가도 꾸준히 했고, 일기 쓰기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내 삶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요가, 일기 쓰기, 사람들 만나기, 여행 다니기... 내가 좋아하는 그무엇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내 삶의 중심은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뱃속의 아이, 태어난 아이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그게 속상하기도 하고 서럽기까지 해서 울기도 하고 푸념도 했다. 내 시간이고 내 몸이며 내 삶인데,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자주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우리집 주방에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엄마의 뒷모습이 참 작았다. 첫째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1박2일의 일정으로 엄마가 우리집에 와주었다. 손자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딸이 자식을 낳고 산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고, 애처롭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집에 온 엄마는 한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내가 먹을 음식 만들기, 집 정리, 아이랑 놀아주기, 아이 먹이고 재우기 등등. 둘째를 낳고 나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주 오지 못하셨으나, 그렇기에 한번 오시면 한순간도 쉬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작은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놓고 살기까지, 우리 엄마 삶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겠구나. 그랬기에 내가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단단히 뿌리박고 그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거구나. '

엄마는 나와 동생을 홀로 키우며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고, 우리가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단 한번도 우리를 재촉하거나, 우리의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내 삶의 뿌리는 언제나 단단했고, 나는 내 나름의 꽃을 피우며 살았다. 그렇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의 인생이 새롭게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에 제약이 생기고, 아이들은 모두 집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보니 그나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마련했던 소소한 일들이 모두 취소되고, 오로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놀리고 재우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하루하루가 문득 우울하게 느껴질 때마다 엄마의 작은 뒷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44사이즈도 안될 만큼 말라버린 엄마의 다리를 떠올리며,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잠시만 내려놓기로 한다. 내가 그랬듯 아이들도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의 중심에 자기자신을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엄마가 그랬듯 그렇게 물을 주고, 볕을 주고, 거름을 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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