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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1. 2020

배려와 눈치 사이.

너무도 다른 남녀가 한 집에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전 신랑과 크게 다툰 사건이 있었다. 신랑이 던진 단 한 마디에서 시작된 다툼으로 인해 나는 나와 신랑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날따라 아이가 한시도 품을 떠나려고 하지 않아 종일 아이를 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먹은 걸 토하고, 겨우 씻겨서 옷을 갈아 입히면 응아를 해서 또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뭐 그런 일들이 반복되던.. 그래서 심신이 너무도 지친 그런 날이었다. 신랑이 퇴근해서 오자 숨돌릴 틈이 좀 생겼다. 그런데 신랑의 얼굴이 너무 까칠했다. 며칠동안 제대로 된 밥 한 번 챙겨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말인즉슨 나 역시도 제대로 된 밥을 먹은지 며칠이 지났다는 말이었다.

신랑이 아이와 놀아주는 사이 오랜만에 냉장고를 뒤져 저녁을 차렸다. 다행히 며칠 전 재워 둔 불고기가 있어서 그걸 구워 냈다.


“밥 먹자!”


신랑은 불고기를 한 점 먹더니 대번에

“이거 너무 짜다!”

라고 말했다.

순간 뭔가에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 보는 와중에 힘들게 해놓은 건데 그냥 맛있게 먹으면 안 돼?”

“아니, 누가 안 먹는대? 짜서 짜다고 말한 거야.”


신랑은 평소와 같은 억양과 목소리로 가볍게 말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 말이 너무 서운하게 들렸다. 분명히 오늘 정말 힘들었다고 미리 말했는데..그렇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이 먹으려고 또 삼십분을 서서 식사 준비를 했는데..꼭 굳이 저 말을 했어야 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밥 그만 먹을래. 너무 피곤하니 밥도 안 들어간다.”

숟가락을 놓고 보채는 애를 안고 자리를 떠버렸다. 신랑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는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애를 재우고 나와보니 신랑은 쇼파에 기대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이런 저런 말을 걸어오는 신랑에게 아까의 기분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오늘 진짜 힘들었다고 했지? 그래도 다른 말 안하고 저녁상까지 차렸잖아. 근데 음식 간이 짜다 그런 말을 꼭 할 필요가 있었어?”

“그냥 짜서 짜다고 말한 건데 그게 이렇게 화낼 일이야? 그정도 말도 못하고 눈치 봐야해?”


오마이갓.

심장이 쿵쿵.

‘눈치를 보다라니...!!’

나는 그게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힘들었으니까, 힘든 아내에 대한 배려를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 거였다.

그런데 신랑은 그게 눈치 보는 일이라고 했다.


배려하는 것과 눈치보는 것.

어찌보면 정말 한 끗 차이인 그것.


순간은 너무 화가 나 더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됐다고 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하루 동안 신랑과 대화를 하지 않으며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어떻게 같은 상황에서 나와 신랑은 어감조차 너무나 다른 배려와 눈치를 떠올렸을까?


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 상대를 먼저 살피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대개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 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신랑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거나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라면 하고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랑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다. 자기 할 일 잘 하고 할말 똑부러지게 하는 그래서 적도 많지만 편도 많은 그런 사람.


그날의 다툼은 이틀 밤을 채 넘기지 못했다.

신랑은 내게 먼저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신랑의 사과가 진심이며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받아들였다.


같은 상황에서 너무도 다른 두 단어를 떠올리는 여자와 남자. 아주 가끔은 신랑과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큰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또 괜찮은 건, 그 간극을 우리 두 사람이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저 두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성격 등이 달라 빚어낸 일종의 헤프닝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날과 같은 상황에서 나는

‘나는 오늘 힘들어=내 기분을 살펴서 내 마음에 드는 말을 해줘=그건 나에 대한 배려야’

라는 공식이 성립했다면 신랑은

‘와이프가 오늘 힘들구나’와 ‘불고기가 짜네’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였던 것이다. ‘=‘등호가 성립되지 않는.

그걸 알기에 우리는 다시 함께 웃으며 한 지붕 아래 오늘도 함께 산다. 그게 부부다.


다른 부부들도 우리와 비슷할까?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며, 적당히 인정하고 적당히 포기하며 사는 것이 보통의 모습일까?

문득 남의 집 지붕 아래의 삶이 궁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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