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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2. 2020

대화를  나눈다는 건 마음을 나눈다는 것

아이와의 대화 1

아주 오랜만에 사랑이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신랑이 조금 빨리 먹고 이를 데리고 놀이방으로 들어가고, 이와 둘만 식탁에 남게 되어서 속도를 조금 늦추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수다쟁이 엄마 밑에서 자란 덕에 사랑이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말을 한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라 어색하거나 낯선 자리 혹은 그런 사람 앞에서는 입을 꾹 닫고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나나 신랑 앞에서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수다쟁이 엄마 밑에서 자란 것 치고는 말문이 늦게 트여서 엄마가 말이 많다고 아이도 말이 빠른 건 아닌가 보다 했는데 한 번 말문이 트이니 일사천리였다. 어느날 갑자기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더니, 부사어, 접속어 등 꽤 고급 어휘들도 금방 따라 쓰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렇게 말문이 트인 이후로 나는 사랑이와 대화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공룡과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라 이야기의 주제 역시 대체 공룡과  자동차다. 리의 대화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진. 그게 가능한 것은 사랑이의 상상을 내가  계속해서  말로 받아주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나와 사랑이를 신랑은 신기한 듯 본다. 그런데 나는 그런 대화라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좋다. 언젠가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진짜 대화가 오고 갈 날을 기대할 수 있기에♡




오늘의 이야기 소재는 역시나 공룡이었다. 무슨 이야기 끝에 공룡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핑크퐁 공룡 동요 중에 '공룡이 사라진 이유'라는 노래를 내가 먼저 흥얼거렸더니 이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햇볕을 다 가렸대~ 먹을 게 사라졌대~ 이게 바로 공룡이 사라진 이유~ 아주아주 오래전에~"

"우와, 우리 랑이 가사 다 알고 있네?"

"응! 엄마, 우리 집에 햇볕 많은데 우리 집에 공룡들이 오면 좋을 텐데."


우리 집은 남서향이라 오후 내내 거실 가득 햇살이 들어온다. 아마 그게 떠올랐던 모양이다.


"우리 집에 햇볕 많다. 진짜. 공룡들이 오면 좋겠어?"

"응, 우리 집에 나무도 많은데! 그럼 공룡들이 먹으면 되겠네. 다 먹어도 돼!"


우리 집에는 화분 하나 없으므로, 아마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를 말하는 듯했다.


"맞다. 우리 아파트에 나무 많지. 공룡들이 오면 먹을 것이 많겠다."

"응응. 진짜 오면 좋겠다."

"랑이는 어떤 공룡들이 오면 좋겠는데?"

"브라키오랑 트리케라톱스!"

"근데 사랑아, 공룡들은 엄청 큰데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을까?"

(현실 속의 엄마와 상상 속의 아들...)

"들어올 수 있대!"

"있대?"

"응!"

"우리 집은 높은 곳에 있어서 엘리베이터 타고 와야 하는데 키 큰 브라키오가 엘리베이터 탈 수 있나?"

"응, 탈 수 있대. 타고 오면 돼!"

"랑이는 공룡들이랑 같이 살고 싶구나. 근데 공룡들이 오면 잠은 어디서 재워주지?"

"침대방에서 다 같이 자면 되지!"


웃음이 터졌다. 오랜만에 아이와 웃으며 밥을 먹었다. 사랑이와의 말도 안 되는 대화가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내가 웃으니 사랑이도 웃었다. 요즘 들어 혼낼 일도 많고, 마음 쓰이게 하는 일도 많아서 아이와 온전히 마음을 나눌 틈이 없었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와 마음을 나눈 느낌이었다.




사랑이가 자라고 자라서 소년이 되고 어른이 된 후에도 오늘처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다. 서로 휴대전화를 보느라 고개도 들지 않는 식사 시간이 아닌, 서로의 눈을 맞추며 일상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도 마음을 나눈 오늘처럼, 오랜 시간 우리가 그런 '모자 관계'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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