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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2. 2020

미안해, 마음을 전하는 말

아이의 말

사랑이는 요즘 봄이에게 극도로 예민한 상태이다. 엄마를 뺏긴 것도 분한데 봄이가 자꾸만 자신의 장난감을 허락도 없이 만지고, 블록을 무너뜨리고, 책까지 찢어버리기 때문이다. 말도 안 통하는데 자꾸만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것을 야금야금 뺏어가니 좋을 리가 없다. 그동안 중간에서 처신을 잘못한 엄마와 아빠의 영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는 언제가 사랑이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떤 재밌는 것을 들이대도 오빠가 하는 게 다 재미있어 보이고, 오빠를 안고 싶고 만지고 싶은 봄이의 마음이 가끔은 애처롭게 보일 지경이다.


잠자리에서도 늘 봄이는 오빠 옆에 누우려고 하는데, 사랑이는 그게 귀찮고 싫은지 봄이를 자기 옆으로 못 오게 하라고 난리다. 옆에 가서 그냥 누워 자면 또 그만그만 괜찮을 텐데 봄이의 잠버릇이 다른 사람의 눈썹과 눈을 만지는 것이다 보니, 사랑이 눈을 자꾸 만지려고 해서 애가 더 기겁을 한다. 잠들려고 하는데 눈과 눈썹을 만지면 누가 좋겠나. 엄마 아빠나 되니까 참는 거지..




지난밤에도 사랑이 옆으로 계속 가려는 봄이와, 그런 봄이에게 가라고 소리치는 사랑이 사이에서 둘을 갈라놓으려 안간힘을 썼다. 봄이도 몇 번 시도하다 안되니 포기를 했는지 내 머리맡에서 내 눈을 만지며 잠을 청했다. 나도 조용히 잠든 척을 하는 동안 몇 분이 지났고, 그렇게 두 아이 모두 잠드는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봄이가 "아빠~!" 하는 통에 정적이 깨졌다. 그러면서 봄이가 또 스멀스멀 오빠 곁으로 가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봄이를 안고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이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봄아, 아까는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나는 사랑이가 잠꼬대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렇다기엔 너무 정확하게 들려서 일단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봄아, 미안해. 아까는 미안해. 오빠가 정말로 미안해."
.....
"가라고 해서 미안해."

실눈을 뜨고 두 아이를 지켜보니 사랑이가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사과를 하고 있었다. 딴에는 아까 계속 봄이를 저리 가라고 하고 밀어냈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봄이는 가만히 오빠의 손길을 느끼며 오빠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듣겠지만 사랑이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사랑이의 눈을 만지지도 않고 정말 가만히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렇게 사랑이가 봄이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두 배 힘든 것이 아니라 백 배는 더 힘든 일이다.


발달 과정이 다른 두 아이가 한 공간에서 애착 대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부모로서 그런 두 아이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는 것 역시 너무나 버겁다. 하지만 지난밤처럼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순간들이 있어서, 한 아이를 키울 때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아주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지난밤의 순간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기에 짧은 글을 쓴다.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가끔은 깨가 쏟아질 때도 있다..24시간 중 1분 정도지만..
오빠노릇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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