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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2. 2020

당신은 그런데 마음 쓰지 마

내가 당신과 결혼을 한 이유

랑은 나보다 2살이 어리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연애, 결혼에 이어 지금까지 5년을 함께 살면서  번도 남편이 나보다 어리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시댁에서도 누나 둘에 막내아들인데 꼭 여동생 둘을 둔 장남처럼 행동한다.


연하만 아니면 된다던 나의 결혼관을 무참히도 깨부수고 나의 남편이 된 그.

책임감도 강하지만 자기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보통이 아닌 그와, 완벽주의자에 가까우면서 감정은 격하게 예민한 내가 한 집에 살면서 우리는 숱하게 부딪히고 다퉜다. 그 전쟁 같은 나날에 대한 기록은 책 한 권을 다 써도 모자랄 것이다. 연인이었다면 수십 번은 헤어졌을 우리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니, 거기에 아이까지 생겨 부모라는 이름까지 게 되니 서로에게 적당히 맞추고 적당히 모르는 척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때는 도시가스비를 시작으로 아파트 관리비, 각종 명세서들이 날아오는 시기가 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우편함이 채워지던 때였다.

우리 둘은 풍족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다행히 둘 다 전문직에 근무하면서 유년기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휴직에 들어가면서 우리 부부의 수입은 반토막이 났다. 수입은 줄었지만 지출은 더 늘어 안 쓰던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 시작했다.

문득 걱정이 되었다. 그 지출 중에는 친정 엄마에게 드리는 약간의 용돈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조금은 남편의 눈치 아닌 눈치도 보였다. (사실 남편은 단 한 번도 그런 부분에서 눈치를 준 적이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남편에게 물었다.


“나 그냥 내년에 랑이 어린이집 보내고 복직할까?”


남편은 내 물음에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당신은 그런 데 마음 쓰지 마. 우리 괜찮아. 랑이 잘 키우고 있잖아.”


순간 남편의 어깨가 아주 넓어 보였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떠올랐다. 처음 엄마에게 남편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무 같은 사람이야. 큰 나무 같은..

이 사람 뒤에 있으면 어떤 바람이 불어도 다 막아줄 것 같아.”


라고 했었다.

없는 집에서 나름대로 잘 자란 나를 엄마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에 보내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을 허락해주셨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이 사람과 그래서 결혼을 했었지.

고집 세고 무뚝뚝한 면 때문에 나를 힘들게도 외롭게도 하지만 이 사람은 언제나 큰 나무처럼 나를 지켜주었지.

잊고 살았다. 내가 왜 그와 결혼을 하고자 했는지. 살다 보니 사소한 일들에 마음이 상해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의 장점은 수면 아래로 잠긴 것이다.


잊고 살았던,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

나에게 힘을 주는, 그를 다시 한번 사랑하게 하는 말. 만의 방식으로 나를 지켜주는 그 말.


“당신은 그런 데 마음 쓰지 마."




그런데.. 여보, 입은 옷은 제발 아무 데나 벗어 놓지 말고 옷걸이에 걸거나 빨래통에 좀 넣어줄래?

이렇게 사소한 일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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