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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3. 2020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봄 사이를 걷다

코로나가 물러갈 이듬해 봄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봄이와 산책을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주 짧은 산책이었다. 9개월에 걸음마를 시작한 봄이는 지난 겨울 내내 오빠의 등원 길을 걸어서 함께 했었다.  추운 겨울날도 아기띠나 유모차를 모두 거부하고 오로지 작은 발로 총총총 걸어 다니던 아기였는데 코로나 19로  외출 금지가 되면서 신발 신을 일조차 없었다. 아빠가 잠깐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 현관에서 자기 신발을 먼저 찾아와서는 신기라고 발을 들고, 마스크까지 찾아와서 입에 대고는 씌워달라고 성화였다, 그런 아이를 보는 게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아파트 단지에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라도 잠깐 산책을 해야겠다 싶었다.

날씨가 하도 좋아서인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띄엄띄엄 각자의 자리를 잡고 앉거나, 각자의 길을 걸으며 조용히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봄이를 아기띠에서 빼서 살포시 바닥에 내리고는 작은 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렇게 조금 걷던 봄이는 내 손을 놓고 만개한 벚꽃 나무를 향해 총총총 작은 걸음을 옮겼다. 벚꽃나무도 올려다 보고, 눈 앞의 진달래도 마주 보고, 이름 모를 꽃나무를 가리키며 나더러 보라고도 손짓도 하고, 바닥에 흩뿌려진 꽃잎들을 밟기도 하면서 그렇게 걷고 뛰었다.




'언제 저만큼이나 컸을까.'

작년 봄에는 봄이가 겨우 100일쯤 되어서 안고 외출을 하기 겁이 났었다. 너무나 작은 아이를 안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계절에 외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우 일 년 사이에 누워만 있던 아이가 걷고 뛰고, 우는 것밖에는 의사표현의 방법이 없던 아이가 옹알이 끝에 한두 마디의 말을 하고, 먹고 자고 싸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던 아이가 집안 곳곳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서 호기심을 표현하는 아이로 자라기까지 딱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함께 일 년이 지나가고 다시 맞은 봄에는 손을 잡고 함께 꽃비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감개무량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예쁜 봄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았지만, 마스크가 옥에 티였다. 겨우 14개월 아이에게도 마스크를 씌우지 않고는 잠깐의 외출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고 속상했다.

이 봄은 이렇게밖에 누릴 수 없지만, 내년 봄에는 더 많은 곳을, 더 넓은 곳을 함께 걷고 뛰며 온몸으로 봄을 만끽하고 싶다.  앞으로 내 생의 봄날은 언제나 우리 봄이, 사랑이와 함께 할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으련다. 이렇게 잠깐이라도 봄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만개한 봄에게 인사해야지,


안녕, 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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