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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12. 2020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다

열아홉 번째 시간-『김미경의 REBOOT』(김미경)

언젠가부터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 특유의 화법들이 나와 맞지 않았고, 뻔한 말들을 그럴싸하게 포장만 해놓은 듯한 표현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점에 들르더라도 자기 계발서 코너 쪽으로는 몸을 돌리지 않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도 자기 계발의 카테고리는 결코 클릭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자기 계발서 중에서도 요즘 가장 화제성이 있는 『김미경의 리부트』를 읽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8월 31일에 9월을 맞이하며 코로나로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글을 써서 브런치와 블로그에 동시에 올렸었다. 그 글을 본 블로그 이웃이자,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딱 한 번 얼굴을 뵌 적이 있는 분이 블로그 비밀 댓글로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해주고 싶다시며 주소를 물어왔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순간 고민도 되었지만 내가 올리는 글들을 자주 보시는 분인지라, 나에게 책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면 뭔가 이유가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다며 주소를 알려드렸고 정확히 이틀 뒤 『김미경의 리부트』가 우리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잃은 일상을 돌려달라고, 아이들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던 내 글을 읽으시고 이 책을 꼭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다는 메시지와 함께.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코로나’라는 2020년 최고의 키워드를 소재로 삼고 있었다. 소재만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될 법한데, 저자가 워낙 유명한 스타 강사니 더더욱 주목받을 만한 책이다 싶었다. 과연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일상을 잃은 이들에게 새롭게 일어설 길을 제안할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미래에 기술될 역사책에는 이런 시대 구분이 실제로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AC로 건너와버렸고 죽으나 사나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33쪽 코로나는 위기가 아니다, 혼돈이다)     


지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까?”, “내년쯤이면 백신이 개발되지 않겠어?”라며 ‘코로나의 끝’을 기다리던 나에게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절망이라기보다 충격이었다. 저자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석학들을 만나고 그들과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최재천 석좌교수님과의 대화에서도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스, 메르스 등의 여러 바이러스를 거쳐 코로나까지 경험하면서도 이전의 바이러스들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백신과 치료제만 개발된다면 ‘끝’이라는 것은 반드시 온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코로나는 그런 식으로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다음 바이러스가 코로나보다 약하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사실 흐름상으로는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발생할 확률이 더 크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까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가 종식될 그날만을 기다리며, 잃어버린 일상을 돌려달라는 기도만 하고 앉아 있기에는 이미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그만 이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었다.


실제로 소수의 부자들은 지금의 이 상황을 엄청난 기회로 보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다를 것 없는 내 생활도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로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고, 오로지 온라인 주문으로만 모든 생필품을 구매하고 있다. 외식을 하지 않고 집밥을 먹다 보니 간편 조리 식품이나 집 근처 반찬 가게에서 매일 새롭게 만드는 반찬들을 구입하는 일이 많아졌다. 카페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더치커피 용액을 인터넷으로 구입해 집에서 직접 더치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손 소독제나 세정제, 마스크가 제일 중요한 생필품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가능한 한 실외 공간으로만 외출을 하고, 부득이하게 실내에 들어가더라도 창문이 열리는 창가 자리에만 앉는다. 그것뿐만이겠는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생활 전반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개인의 생활이 달라졌다는 것은 새롭게 필요한 아이템이나 서비스 등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을 기회로 삼아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일상을 잃고 무너졌다. 집 주변에만 보더라도 코로나 직전에 문을 열었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향에 따라 채 한 달도 문을 열지 못하고 휴업에 들어간 카페가 있다.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는 개인 사업자가 아니다 보니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받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분들이나 꽤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가게를 접은 분들을 보면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부자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현실이 그저 속상하고 아팠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주저앉을 수 없다며,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저앉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리부트 공식 네 가지를 제안했다.      


제1공식 언택트를 넘어 온택트로 세상과 연결하라
제2공식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완벽히 변신하라
제3공식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인디펜던트 워커로 일하다
제4공식 세이프티, 의무가 아닌 생존을 걸고 투자하라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행으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카페며 식당, 호텔과 관광지에는 눈에 띄게 사람들이 줄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코로나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곳이라 정말  3월부터 5월쯤까지는 도로에 차도 별로 다니질 않았다.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아이들은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이 모두 막힌 시대를 저자는 ‘언택트’라고 표현했다. 그 시대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역시나 ‘온택트’ 뿐이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온택트가 가능하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에 ‘변화’를 주는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의 ‘변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신의 무기는 ‘디지털’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특정 조직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재인 ‘인디팬던트 워커’로 키워야 하며, 앞의 네 가지 공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공식은 이 모든 변화가 ‘세이프티’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제안한 네 가지 공식에 내 삶을 대입해보았다. 복직을 했을 때, 어쩌면 이전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휴직 전까지 고등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도 문제풀이식 수업은 죽어도 하기 싫어서 내내 모둠 수업을 했었다. 그때 내 수업의 브랜드명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국어 수업’이었다. 활동 자료는 내가 만든 활동지 달랑 한 장, 나는 그 활동지에 수업에서 다루는 문학 작품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느꼈으면 하는 질문들을 심사숙고하여 담아냈고, 아이들은 그 질문을 매개로 삼아 작품을 읽고 토의하고 토론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이해한 내용들을 공유했고 그 안에서 교사인 나도 나 혼자 읽어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한 반 전원이 등교조차 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서 나와 비슷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모두 절망했고 무너졌다. 내가 현장에 있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정말 단 하나뿐이었다. 지금까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굳이 배우려 애쓰지 않았던 디지털 기술들을 몸에 익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아이들과 택트 해야 한다. 만나지 못한다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다고 그저 EBS 수업이나 틀어주는 교사가 될 수는 없으니. 이쯤 생각을 하다 보니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구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조금 설레기도 했다. 뭔가 이전에 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운 상황 앞에서 정면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코로나 발생 직후 동료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복직 이후의 삶이 걱정스러웠었는데, 더 이상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싶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길은 있고, 나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또 하나, 엄마로서 두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결국 인간을 해치는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가 한정적인 자원을 마구 썼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더 잘 입히고 더 잘 먹이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워서 좋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하지만 이건 일단 살아남은 뒤의 일이다.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빨라져서 지구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땅이 되면 잘 먹고 잘 사는 건 더는 의미 없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247쪽 지옥 같은 세상에 남겨질 아이들)     


섬뜩했다. ‘살아남은 뒤의 일’이라니. 저자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좀 남기고, 돈을 더 쓰고, 불편하자’고 제안했다. 지구의 한정적인 자원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남기려 애쓰고, 가치 있는 일들(환경과 생태)에는 돈을 좀 쓰고, 생활의 불편은 감수하자는 이야기였다. 책을 덮고 집안을 둘러보니 일회용 기저귀, 물티슈, 빨아 쓰는 일회용 행주, 배달음식에 딸려 온 일회용 수저, 종이컵까지… 나의 편의를 위해 들여놓은 수많은 '일회용품'이 어쩌면 그렇게 많았는지.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막 쓰고, 막 버리며 살았던가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어쩌면 이 바이러스의 발생에 나의 작은 생활 습관이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미쳤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사지에 힘이 탁, 풀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야 했다. 정말 사소한 일들이지만 장바구니 쓰기나 텀블러 쓰기, 물티슈 대신 행주와 걸레 쓰기 등. 대단한 이타심이 아니라, 적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두 아이가 살아갈 다음 세상을 위한 일이니까 엄마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돈 주고는 결코 사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 자기 계발서 특유의 “~하라”, “~은 안 된다”라는 확신에 찬, 단정적인 화법이 읽는 중간중간 흐름을 끊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스스로의 위치를 이용해 남들 다 하는 뻔한 말을 나열하기만 한 자기 계발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단정적으로 표현할 만큼 자기 확신에 찬 화법은 저자 스스로 코로나라는 전에 없는 상황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했고,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잃어버린 일상을 돌려달라 투정 부리는 사이, 이미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전의 나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대신에 새로운 세상에 맞서고 적응할 힘을 길러야 한다. 나는 앞으로 수많은 아이들 앞에서 삶을 가르쳐 나갈 대한민국의 교사고, 소중한 두 아이를 잘 키워 새로운 세상에 내어놓아야 할 엄마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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