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살, 2살 두 아이의 엄마다. 적당한 때에 결혼을 했고, 적당한 때에 두 아이를 낳았다.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질문 없이 가는, 그 길을 걸으며 살고 있다. 결혼과 출산은 내게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고, 고민이라면 오직 시기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언제쯤 결혼을 하면 좋을까, 언제쯤 아이를 낳으면 좋을까.'
결혼 전까지 가깝게 지내던 언니가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알게 된 언니였는데, 언니는 대학원 수료 후 직장생활을 하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와 결혼을 했다. 의외였다. 언니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의 연애가 끝내 이별로 귀결된 가장 큰 이유는 언니가 결혼에 전혀 뜻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상대들은 연애의 과정을 통해 언니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언니는 확고했다. 그런 언니가 결혼이라니?
언니의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나는 한창 임용 준비 중이었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 그저 짐작으로만 언니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청첩장을 받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어떻게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예비 형부가 그 정도로 매력적이야?”
“매력적이지. 큭큭. 사실 제일 중요한 가치관이 맞았어.”
“그게 뭐예요?”
“아이를 낳지 않는 것”
그때 나는 이십 대 후반이었다. 그때 나는 연애의 완성은 결혼이고,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연애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는 당연히 낳는 거라고 생각했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10년 전이니, ‘딩크’라는 용어도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때였다. 어쩌면 내가 그런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언니의 대답에 약간, 아니 아주 많이 놀랐다.
“아이를 안 낳는다구요?”
“응. 난 사실 결혼 자체를 하기 싫었다기보다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예비형부도 그렇대요?”
“응. 그 부분에서 의견이 맞아서 그냥 같이 살려고.”
오래전 대화라 토씨는 좀 틀리겠지만 맥락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대화였다. 그때 언니 나이가 서른둘쯤 되었는데 집에서도 슬슬 결혼 압박이 오고, 그건 예비형부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둘은 그냥 부모님께 결혼은 하되,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언니의 결혼식에서 두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던 기억이 선하다.당시에는 두 사람이 특별해 보였고, 그래서 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듯, 하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그 뒤로 나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나는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첫째와 둘째를 연이어 낳는 몇 년 동안 언니와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종종 비혼주의나 딩크 관련된 글을 읽거나 그런 가치관의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언니의 평화로운 표정이 금세 떠오른다.
요즘 브런치에 접속하면 글을 쓰기 전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많이 읽어본다. 그러다 보면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이 ‘퇴사, 연애, 결혼, 이혼, 출산, 육아, 비혼, 딩크’ 등의 소재로 글을 많이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이 쓰인다는 건 그만큼 많이 읽힌다는 것이고, 많이 읽힌다는 건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공감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혼만큼이나 비혼이, 육아만큼이나 딩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의 소재라는 것은 그만큼 그 세계에 발디딘, 혹은 그러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다른 작가님이 쓰신 딩크 관련된 글을 읽고 댓글을 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친한 대학 동기 일곱 명의 모임이 있다. 그중 두 명이 결혼을 했고(그중 한 명이 나이고), 한 명은 비혼, 세 명은 비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에 목매지도 않는, 한 명은 연애를 15년 가까이하고 있지만 굳이 결혼을 서두르지는 않는다. 17년 전 새내기로 만나 한참 연애에 관심이 있던 때에는 지금 나이쯤 되면 우리 모두 애 몇은 딸린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중 절반도 그 길을 가지 않았다니. 확실히 십여 년 전과는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물론 안타깝게도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언제나 비슷한 질문(결혼 언제 해? 연애는 하고 있어?)에 시달린다는 고백을 토로하지만.
나는 비록 애를 둘이나 낳고 매일 치열하게 육아 전투를 치르는 엄마지만, 비혼주의자의 삶도 딩크족의 삶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존중한다. 내 삶이 우울하거나 불행하기 때문에 그들이 부러워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나대로의 삶에 만족한다. 아주 격하게!
물론 힘들고 지쳐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싶을 때도 가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다거나 지금의 현실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만큼 결혼 생활과 육아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내 두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좀 달랐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내 두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평범하다는 프레임을 씌운 삶을 보통이라 명하며, 그 보통을 강요하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는 어느 정도는 해야지
대학은 어느 대학 정도는 가야지
취업은 언제쯤은 해야지, 취업하는 직장은 어느 수준 정도는 돼야지
결혼은 어느 때쯤 해야지
결혼 후 언제쯤은 아이를 낳아야지
내 아이들은 그런 프레임 속에 갇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에 소질이 없으면 다른 소질을 찾을 수 있는 학교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대학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고, 취업을 하든 사업을 하든 시험을 치르든 자기가 선택한 일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고, 결혼을 하든 출산을 하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약속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런 모든 일들이 비난받지 않고, 나아가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 마음과 더불어 엄마로 사는 내 삶도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다. 겨우 티셔츠에 청바지 정도 챙겨 입고는 두 아이 손을 잡고 나선 거리에서 갑자기 아이들이 떼를 부려 막막할 때, 내 곁을 지나가며 아이들이 시끄럽다는 듯, 내가 불쌍하다는 듯 흘겨보는 타인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가지 않은 길,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길을 가는 타인들의 삶을 존중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거친 길을 스스로 내어가며 걸어가는 그들의 삶을 열렬히 응원한다. 보태어 오늘 하루도 두 아이와 고군분투한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삶에도 격려와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