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내는 엄마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나요?

두 아이를 가정보육하고 있습니다만.

by 진아

며칠 전 인터넷 기사에서 어린이집 긴급 보육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기사 자체의 내용보다 댓글들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원색적인 비난을 마구 쏟아부을 수 있는지 그 서슬 퍼런 말들에 베여 피가 철철 흐를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네 살 된 첫째와 두 살 된 둘째, 이렇게 두 아이를 가정보육 중이다. 두 아이의 나이 터울이 딱 23개월이라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 집으로 온 지 2주 만에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보내기 직전까지 정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최선인지 고민을 했었다. 최소 36개월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는 그 신화적인 메시지가 나를 계속 옭아맸다.


2월 중순까지 둘째의 출산으로 조리원에 있으면서도 고민의 마침표를 찍지 못하다가, 집 근처에 딱 하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갑작스럽게 입소가 확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끝내 나는 복직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아이는 결국 어린이집에 가게 될 텐데 믿을 만한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다는 것은 나와 같은 예비 워킹맘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첫째는 그렇게 처음으로 엄마와 분리되는 시간을 차근차근 잘 받아들였고, 입소 후 단 한 번도 어린이집의 등원이나 생활 문제로 힘들어하지 않을 만큼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손쓸 수 없을 만큼 퍼지기 시작한 2월 말부터 지금까지, 중간에 한 달 반 정도 잠깐 코로나가 잠잠해져 어린이집이 개원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가정보육을 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둘째가 집으로 오고 2주 만에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두 아이를 온전히, 그것도 매일 돌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두 아이 모두 워낙 개성이 강하고 고집도 센 편이라 주말 이틀 동안 두 아이를 돌보는 데에도 진이 빠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내 아이들이니까, 그리고 기껏 해봐야 주말 이틀이니까 견디는 것이 그렇게 버겁지만은 않았다.


본격적인 가정보육이 시작되자 문제가 달라졌다. 24시간 동안 두 아이를 온전히 내 힘으로 돌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주 감사하게도 신랑이 육아에 적극적인 편이라 내 역할을 많이 덜어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모든 순간 엄마가 필요했다. 아빠와 잘 놀다가도 먹고, 자고, 씻고, 양치하고, 화장실을 가고, 옷을 갈아입고… 등의 순간에는 무조건 “엄마!!!!”를 외쳐대는 두 아이와 24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랑이 아무리 함께 해주려고 해도 아이들이 너무 완강하게 엄마를 찾아대니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종일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로 변할 때까지 다 마시지도 못한 채 두 아이를 돌보는 데 온 마음을 다했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 아이들이니까, 나 아니면 누구도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이니까, 힘들어도 버텨야 했다.


하지만 사실상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보다 신랑의 역할이었다. 신랑이 비교적 자유롭게 육아시간을 쓸 수 있어서 이른 퇴근을 했고, 그 후부터 아이들이 잠들기까지 어떻게든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 해주려 애썼다. 아이들이 나를 찾아대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놀이터를 돌며 몇 시간이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 물놀이를 가장하여 은근슬쩍 목욕을 시키는 일, 숟가락 비행기 놀이를 가장해서 밥을 먹이는 일, 한 달에 한두 번, 단 두어 시간이라도 내가 엄마 아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일. 신랑이 아니었다면 지난한 가정보육의 시간을 지금처럼 잘 버터 냈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어린이집이 다시 휴원 권고를 받아 긴급 보육만 실시한 지 벌써 4주가 되어간다. 육아를 도맡는 엄마 혹은 아빠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시기이다. 처음도 아니고 지난 2월 말부터 6월 말까지 한 차례의 가정보육 기간을 버텼고, 겨우 일상을 회복하는가 싶던 때에 다시 시작된 가정보육 기간이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 중에 정말 날 선 비난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날카롭게 마음의 한 자리를 베어버린 것은 ‘지 새끼 지가 키우지도 못할 거면 처 낳지를 말든가’, ‘애들 보내 놓고 지는 미용실 가고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는 미.친.것.들’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잠시 눈길이 머물렀던 자리에 쓰여있던 그 글자들이 머리와 가슴에 쿡쿡 그대로 박혔다. 비속어를 쓰지 못하게 되어 있는 댓글의 시스템을 비웃듯 마침표를 쿡쿡 찍어대면서까지 욕설을 내뱉는 그 안에는 어떤 인격이 있는 걸까.


그 댓글들을 쓴 사람 중에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더 마음 아프지만 아이를 키워본 혹은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착각으로, 혹은 이미 가본 길이라는 자만으로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일단 비난하고 보는 그 사람들이 나는 정말로 무서웠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수고로움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키워본 사람이라도, 아이의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전혀 다른 육아 환경이 되므로 타인의 육아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지금 첫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4세 반 14명 중 우리 첫째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등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댓글처럼 아이를 보내 놓고 미용실에 가고 카페를 가서 수다를 떨까? 단언컨대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가지도 못한다!)


그때 엄마들은 한 숨을 돌리고, 밀린 집안일을 한다. 대여섯 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다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다시 아이들에게 헌신할 마음을 다진다. 적어도 내가 아는 모든 엄마는 그렇다. 아빠들이 아이들 일어나는 시간쯤 출근해서 저녁 식사 때쯤 퇴근하는 이상 엄마 혼자 모든 육아의 짐을 이고 지고 견디기에는 아무리 내 새끼라도 버겁다. (물론 정말로 놀고먹으며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일 뿐이다. 정말로.)


내가 특별히 모성애가 강한 엄마라서 두 아이의 가정보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황이 그럴 만한 상황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신랑의 이른 퇴근, 높은 육아 기여도 덕분에 겨우 버틸 수 있다. 몇 시간만 버티면 나의 육아 동지가 짠하고 나타나 나를 구원해주리라는 믿음, 그 덕분에 이 어려운 시기를 두 아이 모두 내 품에 끌어안고 키워낼 수 있는 거다.


이 시국에 왜 어린이집에 보내냐며 앞뒤 없이 싸잡아 욕하며 비난하기보다, 최소한 부부만이라도 아이의 양육을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공감대부터 형성되면 좋겠다. 그런 시스템 아래에서 엄마와 아빠의 육아 기여도가 동등해질 때, 비로소 어린이집에는 정말로 긴급한 보육 상황이 필요한 아이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아이들도 이른 하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온 나라가 비상 상황인 이런 때에, 서로에 대한 날 선 비난이라도 좀 덜 하면 좋겠다. 어떤 삶도 쉬운 삶은 없겠지만 집에서 애 보는 엄마 혹은 아빠들도 미치기 직전이다. 제발 누군가에게 비난의 활을 겨누기 전에, 누군가의 고통과 수고로움에 대해 단 한 번만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아이들을 그런 사회에 내어놓고 싶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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