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오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반대쪽에서 큰소리가 나길래 쳐다보았더니 엄마로 보이는 여자분이 예닐곱 살쯤 되는 남자아이의 등을 참으로 매섭게도 때리고 있었다. 차들이 교차하며 내달리는 소리에 엄마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의 등과 엄마의 손바닥이 맞닿으며 나는 강렬한 마찰음은 횡단보도 건너편까지도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우리를 비롯한 횡단보도 주위에 서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모자에게 쏟아졌지만, 그 엄마는 화가 날 대로 났는지 주변의 시선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 서 있던 사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맞은편에 보이는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물었다.
“엄마, 형아 엄마가 왜 형아 때려?"
“아... 엄마도 잘 모르겠어.”
때마침 초록불이 바뀌어 우리는 그들이 서 있던 자리로, 그들은 우리가 서 있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은 아이는 울고 있었고, 엄마는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내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얼핏 들은 말로는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마” 정도였다. 사랑이는 그들이 우리와 교차하여 제 갈 길을 가는 내내 몸을 반쯤 뒤로 돌린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엄마, 저 형아 엄마한테 왜 혼났대?”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걸 했대.”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거 하면 맞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
“아마 형아가 계속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화가 너무너무 많이 났나 봐.”
“화나면 때려?”
“아냐. 그런 건. 형아 엄마가 형아를 때린 건 실수한 거야. 누군가를 때리는 건 나쁜 행동이거든.”
“형아 엄마가 형아한테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형아도 엄마 말 안 들어서 미안하다고 하고, 형아 엄마도 형아한테 때려서 미안하다고 할 거야.”
아이의 질문에 답하며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 말라는 걸 하면 맞는 거냐, 화가 나면 때리는 거냐는 아이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요즘 종종 동생과 육탄전(?)을 벌이며 싸우는 첫째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때리는 건 안된다고 가르치던 참이었다.
엄마가 된 이상, 처음 보는 그 엄마가 어떤 마음의 단계를 거치고 또 거쳐 그런 행동으로 나아갔을지가 짐작이 되었다. 엄마 입장에서 하지 말라고 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자신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 정도인데 비슷한 기준이라 치고) 아마도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여러 번 듣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여러 번 말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고, 그럼에도 아이의 행동이 전혀 수정되지 않자 순간적으로 손이 올라갔을 것이다.(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습관적으로 길거리에서 아이의 등짝을 내려치는 행동을 하는 분은 아니셨기를...)
그 마음의 단계 단계를 전혀 모르는 바 아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에서 엄마에게 등을 맞고는 훌쩍이며 걸어가던 아이, 우리와 어깨가 교차되던 순간 자신을 쳐다보던 우리 첫째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그 아이의 축 처진 어깨가 오랫동안 잊히질 않았다. 그 엄마인들 마음이 편했을까 마는, 아이의 어깨가 너무나 안쓰러워 같은 엄마 입장에서도 엄마가 조금만 더 참았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순간적으로 화를 참기 어려울 때 스스로도 모르게 손부터 올라가는 경험, 엄마가 된 이상 충분히 겪어본 적 있을 만한 상황이다. 정말 아이가 너무나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같은 상황에서 몇 번이나 같은 주의를 주었는 데도 아이의 행동이 전혀 변화되지 않을 때, 꼭 나를 약 올리듯이 행동할 때, 순간적으로 알밤 한 대쯤 콕 쥐어박고 싶거나 엉덩이 한두 대쯤 탕탕 때리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게는 그런 순간마다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하나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님의 에세이집 제목으로 유명한 말이다. 대학생 때 읽었던 책이라 내용은 가물가물한데도 이상하리만치 이 문장은 머릿속에 날카로운 조각도로 각인을 한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김혜자 님의 에세이에서는 폭력과 가난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극빈국의 여성 또는 청소년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꽃으로로 때리지 말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내게는 그것이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는 관용구가 되었다.
말 안 듣는 아이의 등짝 한 대 때리는 일, 이마를 한 대 콩 쥐어박는 일, 폭력이라고 하기에는 참 사소해 보이는 일들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폭력일 수 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꼈고, 정서적으로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폭력이 된다.
가끔 훈육의 방법으로 체벌에 대해서 ‘우리 때는 다 맞고 자랐다. 요즘 애들은 안 맞아서 버릇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이 좋은 훈육의 방법일까. 체벌은 아주 빠른 방법이기는 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상관없이, 순간적인 행동 교정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진짜 의미 있는 훈육은 결코 그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인내의 에너지가 더 쓰인다 하더라도 차근차근 하나하나 가르쳐 나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읽은 오은영 박사님의 인터뷰 글이 떠오른다. 박사님 스스로 자신이 육아에서 가장 잘한 일은 단 한 번도 아이를 때리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육아 전문가이신 오은영 박사님께도 그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면, 보통의 부모들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이 된다. 하지만 또 못할 일은 아니다. 오은영 박사님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제대로 헤아려줄 수 있는 엄마까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내 화를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아이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치듯 마주쳤던 장면에서 많은 생각을 한 날이었다. 그 모자 사이에 어떤 시간들이 있었고, 그 엄마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화가 쌓이고 쌓여 길 한가운데에서 그렇게 매몰차게 아이에게 손을 대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그를 비난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우리에게 보낸 그 수치스러움의 눈빛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뿐이다. 더불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도 "그 형아랑 엄마는 화해했대?" 물어오는 아이를 보며, 잠깐 지나며 본 광경조차 오랫동안 마음에 두는 아이의 여린 마음을 지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