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했다는 너의 말

언젠가는, 엄마의 사랑을 온 마음으로 느낄 너희에게

by 진아

가정 보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아이와 나, 이렇게 셋이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적절히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치열하게 부딪히고 그러다 화해하고를 반복하는 나날들이다.


아무래도 두 아이를 동시에 돌보다 보면 어린 둘째에게로 시선이 갈 때가 많은데, 그것은 둘째가 위험한 상황에 더 많이 또 더 자주 노출되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는 그나마 덜 하지만 바깥에 나갔을 때에는 아무 겁도 없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둘째를 쫓아다니느라 첫째에게는 확실히 시선이 덜 간다. 위험한 것도 알고, 스스로도 위험한 일에는 선뜻 발을 들이지 않는 첫째의 성격을 믿기에 더 그럴 것이다. 그나마 나은 집안에서도 욕실이나 아이들 놀이방에 놓인 2층 침대, 소파 위, 식탁 의자 등은 둘째에게 너무도 위험한 곳들이라 알게 모르게 자꾸만 둘째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그 와중에 둘째가 낮잠이라도 자야 하는 시간이 되면 첫째는 은연중에 혼자 방치되기도 한다.



요 며칠 그런 일들이 유난히 잦았다. 오늘은 신랑의 퇴근이 늦어져서 온종일 독박 육아를 했다. 오후에 놀이터라도 잠시 데리고 나갈까 하다가 그냥 집에 눌러앉았더니 별다르게 할 일이 없었다. 다 늦은 저녁 시간에 욕조에 물을 받아 셋이서 물놀이를 했다. 오랜만에 두 아이를 데리고 욕조에 앉아보니 이제 두 아이 모두 제법 컸는지 욕조가 비좁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품에 앉아서 잘 놀던 둘째는 이제 좀 컸다고 그러는지 제 허리를 감싸 안는 내 손을 자꾸만 밀쳐냈다. 어쩔 수 없이 욕조 바깥에 쪼그리고 앉은 채, 한 손으로 둘째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첫째가 계속해서 나에게 같이 놀자는 사인을 보내는데도, 이리 미끌 저리 미끌 하는 둘째가 신경 쓰여 제대로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욕조에서 나오려고 발을 빼내던 둘째가 미끄러지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내가 잡고 있었던 데다가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있었고 그리 세게 넘어진 것도 아니라서 잠깐 울고 그쳤지만, 도무지 욕실에 놀이를 지속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아, 우리 나가자. 이제."

"엄마, 좀만 더 놀면 안 될까?"

"지금 욕실에서 엄마가 너희 둘을 다 봐야 하는데 오늘따라 봄이가 너무 위험한 순간이 많네. 엄마가 봄이를 보는 동안 너도 위험할 수 있고."

"더 놀고 싶은데.."

"미안해, 사랑아."


첫째는 피곤하기도 했는지 더 이상 보채지 않고 눈을 껌벅거리며 순순히 따라 나왔다. 아이의 몸을 닦이고 옷을 챙기는데 갑자기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 속상했어."

"응?"

"물놀이 더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나가자고 해서 속상했어."

"아. 그래. 우리 사랑이 속상했구나. 엄마가 진짜 미안해."


구구절절 왜 더 욕실에 놀 수 없었는지 설명했지만 아이는 잠이 와서인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건지, 이미 제 마음을 털어놓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던 건지, 눈을 비비며 연신 하품만 해댔다. 그러더니 둘째에게로 돌아서려는 찰나, 갑자기 다시 말문을 열였다.

"근데 엄마"

"응?"

"나 아까도 속상했는데.."

"언제?"

"아침에 돌멩이로 놀 때"

"아, 그때"

"응. 그때도 더 놀고 싶었는데 엄마가 들어가자고 해서 속상했었어."



생각해보니 오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잠시 바깥놀이를 나갔는데 둘째가 너무 위험하게 놀려고 하는 바람에 첫째의 부름에 제대로 대꾸를 못해주었었다. 그때도 결국 이단 분리되는 두 아이를 내 눈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더 놀고 싶어 하는 첫째를 설득해 집으로 데리고 왔던 터였다.


종일 동생 때문에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는 경험을 했던 첫째는, 오전에 있었던 일을 해 질 녘까지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모양이었다. 속상했다는 아이에게 앞뒤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더불어 아빠가 집에 있는 날 꼭 둘이서 물놀이도 하고, 가게 놀이도 하러 가자고 약속했다. 마음이 풀린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내내 잘 놀다가 이른 잠에 들었다.


그래도 첫째가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내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내 속상했을 첫째를 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실 둘째에게도 그런 일이 정말 많을 텐데, 말을 못 하니 표현도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둘째를 보는 마음은 그 마음대로 좋지 않았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늘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에 잠든 두 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괜히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딴에 애를 쓴다고 쓰는데도 언제나 아이들에게는 모자라다고 하니 어떻게 더 해야 할까 막막하기도 했다. 내 양쪽 팔에 기대어 깊이 잠든 두 아이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괜히 더 감상에 젖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른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무엇도 할 에너지가 없었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거실을 그대로 두고, 소파에 온 몸을 다 기대고 누워서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종일 함께 하며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 아이들은 어쩜, 하나같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 하며, 사랑스러운 눈빛 하며, 오물거리며 밥 먹는 입 하며, 한순간도 빠짐없이 행복해 보였다. 사진 속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는 않지만,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대상도 나, 사랑스러운 눈빛에 담긴 실루엣도 나, 오물거리며 먹는 그 밥상을 차린 것도 나, 아이들의 반대편에는 묵묵히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제야 다른 생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애쓰고 있지만 부족한 엄마가 아니라 부족할지라도 애쓰고 있는 엄마라는 생각이, 아이들은 내 품 안에서 그리고 나의 시간 안에서 이토록 잘 자라나고 있다는 확신이 말이다.


언젠가는 아이들의 마음에 내 진심이, 내 온전한 사랑이 모두 다 가닿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 날까지, 지치지 말자고 다짐하며 길고도 짧았던 오늘 하루도 보낸다.


안녕, 잘 가.

선선한 가을바람 불던 9월의 어느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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