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일, 좋은 엄마가 되는 지름길

엄마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by 진아

나의 하루는 아이들이 모두 잠드는 저녁 여덟 시 반을 기점으로 새롭게 시작된다. 두 아이 모두 아침형 인간이라 여섯 시 반이면 일어나, 낮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종일 논다. 그렇게 아이들의 에너지를 따라 열네 시간 풀타임 근무를 하고 나면 엄마로서의 에너지는 바닥이 된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을 재우느라 어두운 방안에 누워 있으면 금세 잠이 쏟아진다. 그럴 땐 남아 있던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내어 정신을 다잡는다. 암막커튼까지 설치해 빛이라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안방에서 졸음과의 사투를 벌이는 나를 떠올리면 처량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두 아이가 고른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이 들면, 최대한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온다. 고작 문 하나 사이인데 공기가 다르다. 두 아이의 엄마로는 완전히 방전된 채 잠을 쫓던 안방에서 오롯이 ‘나’라는 개인이 되는 거실로의 이동! 그 순간의 짜릿함은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가는 입구를 통과하는 기분쯤 되지 않을까. 엄마로서의 에너지는 제로가 되는 그 시간, ‘나’로서의 에너지는 급속 충전된다.


저녁 자유 시간이 길어진 것은 지난한 가정보육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올초까지만 하더라도 낮잠을 자지 않고는 감당 못할 떼를 부리는 첫째를 어떻게든 재우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큰 육아 미션이었다. 그런데 이제 4세 후반쯤 되니 낮잠을 자지 않고도 별 짜증이 없었다. 스스로도 낮잠 자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통에 일부러 재우려 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밤잠 시간이 두 시간 정도 앞당겨졌다. 둘째는 여전히 낮잠이 필수적인 시기라 두 아이를 함께 보면서도 어떻게든 재우는데, 아무래도 거실에서 첫째와 내가 노는 소리가 들려서인지 긴 시간 자지 못했다. 덕분에 둘째의 밤잠 시간도 훅 당겨졌다.


요즘은 빠르면 일곱 시 사십 분, 늦어도 여덟 시에는 가족 모두가 잠자리에 눕는다. 첫째는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2분 이내에 잠이 든다. 둘째는 짧은 낮잠이라도 잤다고 꽤나 뒤척이는데 그래도 길어봐야 20분 남짓이다. 그러니 어둠 속에서 20분만 잠들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면, 여덟 시 반쯤부터는 오롯한 ‘나’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종일 두 아이의 육아로 헉헉거렸는데, 그 정도 보상은 있어야 한다. 만약 아이들이 밤잠마저 늦게 잤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신랑의 이른 퇴근이고 뭐고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20개월이 막 지난 둘째가 자다가 수시로 깨서는 엄마를 찾는 탓에 외출은 상상도 못 하지만 거실에서 사부작사부작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육아의 숨통이 트인다.


이른 육퇴의 맛을 본 이후부터, '나'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해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동안 거의 축지법을 쓰듯이 움직이고 있다. 퇴근한 아빠와 노느라 아이들이 내게서 조금 분리될 동안에 가능한 한 빨리 밀린 집안일을 한다. 세탁기 돌리기, 장난감 정리, 저녁 식사 준비 및 설거지, 주방 정리, 욕실 정리까지 후다다닥, 그 속도가 가끔은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가능하면 샤워도 미리 마친다. 젖은 머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그럼 또 어떠랴 싶다.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지는 순간, 오롯이 나의 시간이 펼쳐질 텐데!



나는 엄마라는 역할이 참 좋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정말 힘들게 하더라도, 회복이 빠른 편이다. 아이들이 정말로 너무 예쁘다. 얼마 전 만난 동생이 “애들 바라보는 언니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아이들을 보는 나 자신을 인지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워낙 예민하고 고집 센 두 아이가 종일 붙어 있다 보니, 혼 낼 일도 많고 그러다 가끔은 내 감정이 스스로 제어가 안되어서 소리 지르며 화낼 때도 있다(반성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나 개인으로서는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나 사이의 오늘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임을 알기에 매 순간이 소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로서 이토록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늘어지고 흘려버리는 순간들이 왜 없겠냐마는(사실은 어제도 그랬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놀면 뭐하니’를 다운로드하여 보고 바로 잤다), 대체로는 어떻게든 내 시간을 찾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여기서 내가 찾으려고 애쓴 ‘내 시간’은 오롯이 ‘나’라는 개인으로 사고(思考)하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두 아이가 잠든 이후 내가 하는 일은 ‘읽고 쓰는 일’이다. 한 달에 책을 서너 권쯤 읽고 있고, 읽은 책에 대한 후기를 꼬박꼬박 쓰고 있다. 작년 12월 말부터는 몇 년 동안 멈추었던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해서 오늘까지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좋은 기회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육아시도 쓰고, 육아 에세이도 쓰면서 감사하게도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구독자 분들도 만났다.

엄마에서 나로 변신하는 순간, 요즘 읽고 있는 책 두 권과 노트북


“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아?”

“언제 그 책을 다 읽고, 그 글을 다 쓰는 거야? 무슨 에너지로?


최근에 지인들에게 들은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꾸준함의 힘을 믿기에 부지런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가끔은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달려서 내가 뭘 얻으려는 건가 싶기도 다. 누가 내 글을 시간 맞춰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하루라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스스로 초조함이 들기도 하니, 이건 일종의 강박이 아닌가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토록 ‘나’의 시간에 몰두하며 읽고 쓰는 데 매달리는 이유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도, 어떤 강박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청난 육체노동이기도 했지만 ,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정신노동이기도 했다. 순간 방심하면 정신줄을 놓기 일쑤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떠올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나를 일으키는 단 하나의 힘은 ‘나’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하루 그 두어 시간과 그 일들에서 나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힘은 또 육아의 순간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은 내 글의 가장 소중한 글감이 되어주었다. 아이를 키우며 조금 더 나은 '나'로 살고 싶다는 소망과, 내 아이를 내어 놓을 세상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피곤한 가운데도 늦은 밤 책장을 넘기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위치 또한 다 내려놓은 채 오직 엄마로 사는 시간이 도리어 나다운 '나'를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틈바구니에 짬을 내어 오롯이 ‘나’로 사는 시간을 찾아내자 이번엔 그 시간들이 쉽지 않은 육아를 버티게 하는 정신의 처방전이 되어주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육아의 순간에도 자신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직 ‘나’로 사고하고 느끼는 시간이 하루 단 몇 분이라도 좋으니 꼭 있었으면 좋겠다. 온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나'고 뭐고 간에 그저 자리 깔고 누워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 마음, 너무 잘 안다. 몸이 고단해 죽을 맛인데 자아 찾기라니, 어이없는 소리로 여기는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의 건강을 조금만 회복하면 육아 우울감의 수치가 확 떨어진다.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는 이상 육아 우울감의 수치가 제로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마음의 처방전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건 정말 경험을 통해 직접 확인한 바이다.


무엇이든 좋다. 내게는 읽고 쓰는 일이 처방전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일이, 운동을 하는 일이,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 가볍게 산책을 하는 일이, 사진을 찍는 일이, 커피를 내려 음미하며 마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일이 자신이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이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효과가 좋고,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이 남을 때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하더라도 체중 몇 키로의 감량을 정확히 목표로 두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나 역시도 그냥 책 많이 읽어야지, 글 써봐야지 했던 것보다 한 달에 세 권 이상 읽기와 매일 일기 쓰기로 정해놓고 '나'의 시간을 소비한 뒤에 마음의 건강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게 저마다의 정신적 처방전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키며 엄마가 된다면 어쩌면 길지 않을, 하지만 당시의 순간만은 너무나 힘겹고 버거운 육아의 시간도 버텨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 엄마와 아빠의 곁에서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져 갈 때면 그간 지켜왔던 ‘나’를 꺼내어 멋지게 인생 2막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그렇게 낭만적인 꿈을 꾸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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