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에 대해 요즘처럼 자주 생각했던 적이 있을까. 엄마가 된 후로 상상 이상으로 행복했지만, 그만큼 자주 서럽고 외로웠다. 자주 ‘나’를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막연해졌다.
그러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나’가 도대체 어떤 ‘나’였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엄마가 되었다 하더라도 나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데, 왜 대체 이토록 정체성이 흔들리고, 내 세계가 통째로 무너져버린 듯한지 혼란스러웠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삼십여 년을 '나'로 살면서도 정작 나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딸로, 동생의 언니로, 학생으로, 교사로, 누군가의 동료로, 그렇게 내게 부여된 역할대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정작 그 안에 진짜 ‘나’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내 삶의 종착지에 가닿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어떤 질문에도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딸이나, 언니, 학생, 교사, 동료 등은 모두 요즘 유행하는 말로 ‘부캐’ 일뿐인데, 정작 본캐인 ‘나’ 자신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부캐의 역할에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내게 부여된 역할에서 혼란이 오거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중심축을 찾지 못하고 세차게 흔들렸다. 그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는 시를 되뇌며 흔들리는 나를 빨리 다잡으려 애썼을 뿐이었다. 빨리 마음을 일으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하거나 다독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내가 가진 어떤 부캐와도 비교되지 않을 ‘엄마’라는 엄청난 부캐를 얻었으니 흔들리고 무너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육아를 하는 동안 나는 내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오직 이유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주 가끔이었지만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엄마의 자리로 돌아오고 나면 이내 다시 버겁고 힘들었다. 많이 지쳐서 이토록 회복이 안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우연한 계기로 한 달에 한 번 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버겁다고 생각했던 때라, 무언가 강제하는 것이 있다면 좀 나을까 싶은 생각에 신청한 것이었다. 그저 엄마라는 부캐로만 살고 있는 내게 일종의 돌파구가 되어줄까 하는 기대로 시작한 독서가 ‘나’라는 본캐를 찾는 길로 인도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독서 모임에 처음 발을 들인 지 올 11월로 딱 일 년이 된다. 그동안 독서 모임은 한 달에 세 개로 늘어났다. 한 달에 책 세 권은 어떻게든 읽는다는 말이다. 독서 모임이 하나에서 세 개로 늘어나는 동안,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조금은 자란 탓도 있겠지만, 내가 ‘나’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 변화의 싹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 읽기를 과제처럼 느끼고, 다음 독서 모임까지 꼭 읽어내기 위해 일상에서 틈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낮잠 시간,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시간에 책을 읽었다. 얼마 동안은 참 힘이 들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어질러진 집안을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아이들의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한다는, 늦은 밤이 되면 저녁 설거지도 마무리해야 하고, 빨래도 개서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렇게 엄마라는 역할과 맞물려 돌아가는 주부라는 역할이 너무나 강력해서 내 시간 따위가 침범할 틈이 없었다. 도리어 ‘나’를 위한 시간이 나를 더 피로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현듯 어느 순간,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내게는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든 이후로는 책 읽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 이외에 내가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책 읽기에 글쓰기까지 더해지자 금상첨화가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는 구독자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분들이 내 글을 시간 정해놓고 기다리는 것도 아닐 텐데도, 거의 매일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 답을 찾아갔다. 책 읽기는 내가 모르던 세계를 보여주었고, 글쓰기는 내 안의 모르던 나를 끄집어내 주었다. 그렇게 잃었다고 하기엔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던, ‘나’라는 존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정말 문득, 아주 문득 ‘엄마라는 역할도 부캐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캐는‘나’ 일뿐, 엄마가 내 본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정체성이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씩 분리되자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어설프더라도 함께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저녁 설거지도 후다닥 마쳤다. 빨래는 아이들을 씻기고 나면 바로 세탁기를 돌렸고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에는 건조기만 돌렸다. 그리고 다음 날 틈날 때 조금씩 개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잠드는 순간, 엄마라는 부캐에서 확실히 퇴근을 했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잠들면 ‘육퇴다!’라며 좋아하면서도 쌓여있는 집안일들을 보며 한숨이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잠들면 바로 본캐의 등장을 준비하느라 설레기 그지없다.
안방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이전 같았으면 그냥 보고 넘기지 못했을, 정말 어설프게 정리된 거실이나 아이들 놀이방이 이제는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개지 못한 채 바구니에 담겨 있는 빨래들도 지금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에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잠든 이상 나는 오롯이 ‘나’가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좋은 문장을 필사한다. 누군가는 나의 성실함이나 끈기를 칭찬하지만, 내게는 이 일들이 성실과 끈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하루 중 유일하게 나를 위한 시간, 오직 ‘나’라는 본캐로 회귀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지치지 않을 수밖에. 도리어 종일 엄마라는 부캐로 생활하며 버거웠던 순간들을 위로하고 보상받는 시간이다.
엄마가 내 부캐라고 생각하고 나니, 조금 더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이라는 본캐를 지키며 누리는, 하나의 새로운 역할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조금은 덜 힘들게 이 시기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예능에서 보이는 본캐와 부캐의 관계는, 나 자신과 엄마라는 역할의 관계와는 다른 맥락이다. 그들의 부캐는 놀이에 가깝지만, 엄마라는 부캐는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엄마라는 부캐 역시 내게 새롭게 부여된 역할일 뿐이다. 엄마라는 역할은 한 번 맡게 된 이상, 어떤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은 결코 놓을 수 없는 역할이기에 그 책임이 막중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의 비중이 줄어들 것은 분명한 일이다.
아이들이 어린 지금은 아이들이 모든 세상이자 우주가 엄마인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역할도 엄청나게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리 멀지 않은 언젠가에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세상으로, 우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엄마라는 부캐에 내 대부분의 에너지를 쓸 날도 사실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내 둥지를 벗어나 훌훌 저희들의 세상을 찾아가고 난 뒤, 공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라는 본캐를 잘 지켜야 한다. 적어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네가 나에게 이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언제든 내 곁을 떠나려는 아이들에게 “너와 오롯이 함께 한 시간들은 정말로 행복했어. 엄마도 이제 엄마의 시간을 좀 내려놓고 ‘나’의 시간에 몰두해볼게. 그러니 너도 너의 삶을 살아가렴.”이라고 가볍고 산뜻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물론 “언제든 엄마의 품이 필요하면 엄마에게로 날아오렴. 엄마는 어떤 순간에도 너의 엄마이니까.”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나를 잃지 않으며 엄마로 사는 삶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던가. 세상 모든 엄마들이, 엄마라는 부캐에 갇히지 않고 ‘나’라는 본캐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엄마라는 자리가 버겁고 힘든 순간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