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캐리어를 끌고 왔다. 고작 여덟 시간 머물거면서

by 진아

엄마가 왔다



엄마는 채 몇 시간 머물지도 않을 딸네에 오면서

20인치 캐리어를 끌고 왔다

심지어 작은 장바구니 하나까지 들고

현관문 들어서기 무섭게

캐리어 여는 엄마의 손끝에서

며칠 전부터 준비했을 엄마의 마음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 끼 먹기 좋게 소분한 불고기 몇 덩어리

손주들을 생각해 두 마리씩 포장한 참가자미 몇 봉지

일일이 손질해 하나씩 묶은 오징어 몇 마리

딸이 좋아하는 시루떡 한 봉지와 손자가 좋아하는 백설기 한 봉지

고향의 특산물인 어묵, 그중에서도 제일 비싼 것만 골라 담은 어묵 한 봉지



상하지 않도록 꽁꽁 얼려 온 엄마의 마음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 집 냉장고가 너무 작아 보였다

엄마 뭘 이렇게 많이 해왔어요. 잘 먹을게요.

짧은 말 두 마디 겨우 건넸다

엄마 마음을 고스란히 품기에

턱없이 모자란 말이었다


고작 점심 한 끼 먹고 돌아가는 엄마를 배웅했다

엄마는 빈 캐리어를 끌고 갔다

허전해 보일 줄 알았던 엄마의 뒷모습은

어쩐지 여느 때보다 경쾌했다

엄마는 내게 모든 마음을 내어주고

가볍게 돌아갔다

또다시 오랫동안 갖지 못할

딸과의 시간을 빈 캐리어 가득 싣고서





엄마가 5개월 만에 집에 다녀가셨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마가 없으면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시는 할머니 때문에 도저히 짬을 내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딸네에 오신 엄마는 캐리어 가득, 아이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오셨다. 모두 한 끼 먹기 좋도록 일일이 소분해, 혹시나 상할까 꽁꽁 얼려온 음식들을 보며 대체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생각했다. 정작 당신은 먹지도 않는 고기에 생선들을 일일이 손질하고 장만하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엄마지만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와도 엄마 곁에만 달라붙어 놀려는 손주들을 보며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할머니랑 숨바꼭질할까?"

숨바꼭질이라는 무시무시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그 길로 내게서 툭 떨어져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숨바꼭질로 시작된 할머니표 놀이는 안고 비행기 태우기, 간지럼 태우기로 이어졌고 아이들은 한 시간도 넘게 나는 찾지도 않고 할머니와 부대끼며 신나게 놀았다.



모든 게 결국은 나를 위한 거란 걸 안다. 아이들 잘 먹는 생선이며 어묵이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아이들 끼니 준비로 고민하는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이 왔을 때라도 나 잠시 쉬라고 아이들과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놀아주신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울 엄마 같은 엄마는 못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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