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시간-『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맹장이라! 신장이라! 이건 맹장이나 신장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은 여기에 있다가 이제 서서히 떠나가고 있어. 그리고 난 그걸 막을 수 없는 거야. 그래, 이렇게 나 자신을 속여봐야 뭐하겠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나만 빼고 다들 분명히 알고 있잖아. 문제는 몇 주 혹은 며칠이 남았느냐인데, 어쩌면 지금 당장일 수도 있겠지. 이곳에 있던 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온통 어둠뿐이구나. 나 역시 이곳에 있지만 곧 사라지고 말겠지! 대체 어디로 말인가?”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두 귀에 심장 뛰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없어지면 그 자리엔 뭐가 남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건가? 내가 없어진다면, 그렇다면 난 어디에 있는 걸까? 정말 내가 죽는 걸까? 아니. 난 죽고 싶지 않아!’ (58쪽~59쪽)
그의 정신적 고통은 그날 밤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게라심의 광대뼈가 두드러진 선량한 얼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르면서 시작되었다. ‘내 삶 전체가, 의식적인 내 삶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하지?’
예전 같으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그게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에 맞서 싸우고 싶다는 충동, 마음속에 어렴풋이 떠오를라치면 서둘러 떨어내 버렸던 그 충동, 그것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망쳐놓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면도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는 똑바로 누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93쪽)
“그래, 모든 것이 잘못되었던 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올바른 것을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올바른 것’이 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나서 갑자기 입을 닫았다.
이 일은 사흘째 되는 날이 끝나갈 무렵, 그가 눈을 감기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 바로 그때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이 아버지 방에 가만히 들어와 침대로 다가갔다. 죽어가는 이는 그때까지도 남은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휘저었다. 그러다 그의 손이 아들의 머리에 부딪쳤다. 아들이 그 손을 잡아 자기 입술에 대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떨어지면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리고 비록 자신의 삶이 완전하지 못했다 해도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침묵하며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뜨고 아들을 바라보았다.(97쪽)
죽음을 자주 생각하고, 곧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때에, 오늘 밤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내 고민이 사라질 것이고, 무엇이 의무이며 개인적 욕망인지도 분명해질 것이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떠올릴 필요가 없으며, 다만 죽음이 점차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고요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문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