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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11. 2020

당신에게는 마음의 허기를 채울 무언가가 있나요

브런치북-『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아트소믈리에 지니)

우리는 몸의 허기를 느낄 때 먹을 것을 찾는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아 냉장고 문을 여닫기도 하고, 근사한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달콤한 디저트를 찾아 먼 길을 나서기도 하고,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사기 위해 벗어둔 외투를 다시 입는 수고를 감수하기도 한다.      


몸의 허기에는 그토록 빠르게 반응하는 우리지만 마음의 허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로울 때, 그리울 때, 괴로울 때, 우울할 때, 함께 할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렇게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아 허전한 마음이 들 때, 그때가 바로 마음의 허기가 느껴진 때이다. 그때 당신은 무엇으로 그 허기를 채우는가? 그 허기를 그저 잠깐 지나가는 감정이라 치부하며 모른 척하지는 않는가?     


여기, 한 점의 그림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보기를 조심스레 권하는 브런치북 한 권이 있다. 바로 아트소믈리에 지니 님의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이다.      




‘살면서 한 번쯤 꺼내 먹을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있나요?’      


저자는 프롤로그의 첫 문장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라는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는 저자는 ‘살면서 꺼내 먹을 만한 그림’이 있는지 물었다. 첫 문장에서 눈을 멈춘 채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내게 그런 그림이 있던가.


문득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서른이 되는 찰나에 친한 언니,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와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20박 21일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유럽 전역을 도장 찍듯 다녀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이탈리아와 프랑스만으로 여행지를 한정했다. 그때 반 고흐의 도시라 불리는 ‘아를’을 만났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배경이 된 론 강변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걷고, 웃고, 생각하며 힘들었던 서로의 이십 대를 위로했다. 아직도 그 강 위에 반짝이던 윤슬과 그날의 날씨, 함께 한 이들의 웃음소리, 우리의 조잘거리는 말소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여행 이후, 나에게 ‘별이 빛나는 밤’은 마음의 허기가 질 때마다 꺼내 보는 한 점의 귀한 그림이 되었다.    

 

셀카 찍는 우리 뒤에 보이는 강이 론강(언니 얼굴엔 스티커로 초상권 보호합니다.^^)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저자의 질문에 답하며 읽기 시작한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은 제목처럼 정말로, 맛.있.었.다. 교과서에서, 인문서에서, 여행을 통해서 실제로 접한 수많은 그림을 요리조리 엮어서는 저자의 경험과 절묘하게 연결해놓은 글이 정말로 맛났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의 뒷모습에게’라는 글은 정갈한 백반 같았고, ‘자신만의 트레이트 마크가 있나요?’는 산뜻한 과일 디저트 뷔페 같았으며, ‘이중섭과 마사코, 그리움이라는 영혼의 편지’는 뭉근하게 끓여낸 한 그릇의 동지 팥죽 같았다. 그 외에도 피카소, 클림트, 카유보트, 반 고흐, 김환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의 삶과 그림 세계를 저마다의 맛으로 풀어놓은 글을 읽으며 헛헛했던 마음이 그득하게 채워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꺼내 보며 마음의 허기를 달래온 시간이 꽤 길어서인지, 여러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역시나 ‘반 고흐’의 그림을 다룬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나요’였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생의 굽이마다 우리를 일으켜주는 것은 ‘단 한 사람’이다. 나를 믿고 온전히 지지해주며, 나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도 일체의 비난을 하지 않는 사람, 그 단 한 사람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반 고흐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물론 많이 알려진 동생 ‘테오’도 있었지만, 실제로 반 고흐의 지척에서 그를 지지해주었던 사람이 또 있었으니 바로 ‘조셉 룰랭’이라는 아를의 우편배달부였다.      


고흐는 룰랭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룰랭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은 그림을 말이다. 저자는 고흐가 룰랭 초상화의 배경에 형형색색의 꽃들을 그려 넣은 것을 ‘룰랭을 아끼는 마음을 담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마음을 담을 방법이 없어 꽃을 듬뿍 그려낸 고흐의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인생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래서 힘들지만, 중요하고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 사람을 가졌느냐고 묻는 어느 시인의 언어처럼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도 /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런 사람을 가졌을 때 삶은 꽤나 살아갈 만해집니다. ('그대는 그럼 사람을 가졌나요' 中)   


저자의 말을 차분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내게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번뜩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그에게 글을 공유하면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이야. 나도 네게 그런 사람이 될게.’ 메시지를 받은 친구는 오늘 하루 너무나 힘들었는데, 큰 위로가 되었다며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는 감동 어린 답신을 보내왔다.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누군가에게 망설임 없이 건네고 싶은 브런치북,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 책 속의 그림 이야기를 따라 산책하듯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이 품고 살만한 한 점의 그림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마음이 허기질 때마다 가만히 꺼내어볼, 나만의 맛있는 그림 한 점을.




이 브런치북 모르는 분 없게 해주세요. 정말로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브런치북이랍니다.  작가님 빨리 출판해주세요.♡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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