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우선 휴학을 했다. 해외연수는 갈 처지가 안 됐다. 이미 학자금 대출이 있었으니까.……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 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 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탐페레 공항)
연봉 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탐페레 공항)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냉방이었다. 등줄기에는 이미 소름이 돋았고 블라우스도 다시 기분 좋게 펄럭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결혼식을 앞두고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만 해도, 턱없이 부족한 전세금을 들고 주말마다 궁색한 집들을 전전했었다.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고 사회에 나와 고작 서너 해 일했을 뿐인 남편과 내가 그간 모은 돈만으로 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해야 했다. (도움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