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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10. 2020

토닥토닥, 위로의 시간을 읽다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우리, 그래도 잘 살아내고 있네요.”


그들이 내게 말을 건다. 기쁨으로 슬픔을 다독이며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 속 여러 인물이 말이다.


멀리서 보면 빛나는 청춘이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대의 진짜 삶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입시, 취업, 연애, 결혼, 육아까지 인생 최대 미션들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미션 중 어느 하나도 쉬운 게 없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꼭 나와 같은 인물들을 만났다. 만만찮은 현실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꿋꿋이 생을 살아가는 그들을 통해, 나의 지나간 20대와 여전히 진행 중인 30대를 토닥토닥 위로받을 수 있었다.


우선 휴학을 했다. 해외연수는 갈 처지가 안 됐다. 이미 학자금 대출이 있었으니까.……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 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 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탐페레 공항)


‘나’의 씁쓸함을 곱씹는데, 문득 남들 다 하는 것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20대 초반의 내가 어른거렸다.

목표하던 대학에 합격하며 멋지게 20대의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했고 20대에게 허락된 자유는 상상 이상으로 달콤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저 달콤함만을 누리게 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나는 매 학기 시험대에 올라야 했다. 어떻게든 정해진 학점 이상을 받아 국가가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그런 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러면서도 시험 전날이면 밤을 새워 공부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내 머리를 부러워했다. 수면의 위아래가 너무도 다른 백조처럼 4년을 살았다. 남들 다 하는 어학연수, 배낭여행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돌이켜 보니 그런 세월을 잘 견뎌준 그때의 어린 내가 고마우면서도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결국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교육대학원을 다녀 교원자격증을 받았다. 임용을 준비하면서는 첫차를 타고 도서관에 가서 빈 열람실의 불을 켜며 하루를 시작했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공부에 매달렸다.


두 해만에 합격을 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던 그 순간,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오열했다. 앞으로는 생계를 걱정할 일도, 여전히 남아 있던 학자금 대출의 이자 납입일에 뒤쫓길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봉 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탐페레 공항)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꿈을 접었다는 데서 오는 회의감은 결코 4대 보험과 상여금이 주는 따뜻함을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은 막 빨아 말려 섬유유연제의 향기가 그대로 배어있는 푹신한 이불에 몸을 쏙 말아 넣는 느낌이었다. 합격, 두 글자를 보며 드디어 내 두 다리가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렸다는 생각에 안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냉방이었다. 등줄기에는 이미 소름이 돋았고 블라우스도 다시 기분 좋게 펄럭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왔다. 우리 참 열심히 살았다고, 그러니 이 냉방 앞에 기죽지 말자고, 그가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직장 생활을 5년쯤 했을 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가진 것 없던 우리 둘은 사랑 하나로 결혼 결심을 했지만 이번에도 내 앞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앞두고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만 해도, 턱없이 부족한 전세금을 들고 주말마다 궁색한 집들을 전전했었다.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고 사회에 나와 고작 서너 해 일했을 뿐인 남편과 내가 그간 모은 돈만으로 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해야 했다. (도움의 손길)


나와 남편의 이야기였다. 우리 수중에 모인 돈은 많지 않았고 양가는 도와줄 형편이 못 되었다. 그릇 하나에도 최저가를 찾아 헤맬 때면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도움을 받지 않으니 간섭받을 일도 없었다. 주체적으로 내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지 않았다.


결혼 다음 마주한 육아라는 미션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윤기 없이 푸석한 피부,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카락, 무언가 다 소진해버린 것만 같은 표정’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 물론 현재의 나는 ‘도움의 손길’ 속에 묘사된 것처럼 마냥 처량하지는 않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상상 이상이었고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지는 경험은 나를 더욱 성장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둘이 살기에도 빠듯한 현실에 새 생명을 들이는 일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저 그와 나의 선택이 달랐을 뿐, 우리의 녹록지 않은 현실은 다르지 않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는 내내 책을 읽는다기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인용한 부분들 외에도 「잘 살겠습니다」에서 청첩장을 돌리며 고민하는 모습이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쉽지 않은 사회생활 가운데서도 소확행을 찾아 즐기는 모습은 몇 년 전의 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소 낮음」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는 장우는 20대의 내 모습이었고,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여자가 느낀 두려움은 결혼 전 혼자 살던 때 밤마다 마주하던 그것과 같았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떻게든 현실에 발 딛고 서보려 버둥거리던 나의 지난 삶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묻어두었던 그 시간을 하나씩 꺼내어 보니,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현실에도 무너지지 않고 참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는 이 순간에도 나만의 일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고 나를 토닥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우리, 내일도 잘 살아내 보아요.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요.”




이 독서감상문으로 오늘, 한 신문사의 독서감상문 대회 대학 및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나간 시간을 위로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었는데, 큰 상을 받으니 얼떨떨하다. 앞으로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이 되라는 뜻인가 보다. 이 계기로 앞으로 더 진솔하고 따스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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