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 (11쪽)
그런 계산과 헛된 희망 속에서 열흘을 보낸 그녀로서는 시몽에게 설복당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시몽은 전화로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직접 얼굴을 대하면 “저는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시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완벽한 어떤 것, 적어도 어떤 것의 완벽한 절반이었다. 이런 일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완벽하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줄곧 앞장서는 입장, 대개 혼자 애쓰는 입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 일에 지쳐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시몽은 사랑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유난히 특이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자신이 개입된 이 연애의 초입에서, 예를 들어 로제와의 관계 초기에 있었던 흥분과 약동 대신 발끝까지 휘감은 거대하고 나른한 권태를 느꼈다. 모두들 나에게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애인을 바꾸게 되는군 하고 그녀는 서글프게 생각했다. 덜 성가시고 더 파리지앵답고 너무나 자주 만나주는 애인으로…….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중략)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