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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03.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폴은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로제와 어떻게 5년 넘게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로제는 자유를 원하면서 왜 폴에게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을 포기하지 못할까.

로제는 오직 폴만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왜 끊임없이 다른 여인들을 만날까.

꽤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폴이 왜 사랑 앞에서만큼은 답답할 정도로 수동적일까.

시몽에 대한 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몽은 왜 폴에게 첫눈에 반했을까.  

폴은 로제와의 관계를 왜 다시 시작했을까.           



사랑에 빠진 사람, 사랑에 흔들리는 사람의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해 놓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들이다. 오랜 연인과의 지지부진한 관계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한 번도 입밖에 내지 못하는 폴, 연인의 외로움을 짐작하면서도 자신의 자유는 포기할 수 없는 ‘로제’,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어 사랑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시몽’, 세 사람의 심리를 따라가며 어떤 때는 깊이 공감하고, 어떤 때는 깊이 분노하며, 또 어떤 때는 심히 의아했다.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 (11쪽)


폴은 로제를 사랑했고, 그래서 로제가 필요했다. 로제 역시 폴을 사랑했지만, 그에게는 사랑만큼 자유가 중요했다. 사랑에 따르는 책임은 로제의 몫이 아니었다. 책임 없는 사랑의 대가는 오직 폴에게만 지워졌다. 폴은 늘 외로웠고, 늘 고독했다.      


폴이 외로웠던 이유는, 로제가 데이트를 끝낸 후 함께 폴의 아파트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폴은 자신의 외로움을 드러내 놓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로제가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될까 봐 언제나 로제의 자유를 존중해주었다. 아니, 그런 척했다. 그 관계에서 점차 시들어 가는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않았다. 그러니 폴은 로제와의 관계에서 어떤 심리적 만족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폴은 끊임없이 로제를 원하고,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소통의 부재는 사랑이 될 수 없다. 마음과 마음이 가닿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그녀에게 오직 그녀만을 위해 움직이는 시몽이라는 매력적인 남자의 등장은 현재의 사랑을 뒤흔들고도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시몽은 오직 ‘폴을 위해, 폴에 의해 사는(85쪽)’ 남자다.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한 이후로 끊임없이 폴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시몽은 폴의 마음속 빈자리를 단숨에 채울 만큼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폴은 계속해서 시몽을 밀어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로제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외로움과 무력감이 더해가던 때 다시금 자신 앞에 나타난 시몽을 끝내는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폴은 시몽에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걸까.     



그런 계산과 헛된 희망 속에서 열흘을 보낸 그녀로서는 시몽에게 설복당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시몽은 전화로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직접 얼굴을 대하면 “저는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시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완벽한 어떤 것, 적어도 어떤 것의 완벽한 절반이었다. 이런 일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완벽하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줄곧 앞장서는 입장, 대개 혼자 애쓰는 입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 일에 지쳐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시몽은 사랑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유난히 특이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자신이 개입된 이 연애의 초입에서, 예를 들어 로제와의 관계 초기에 있었던 흥분과 약동 대신 발끝까지 휘감은 거대하고 나른한 권태를 느꼈다. 모두들 나에게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애인을 바꾸게 되는군 하고 그녀는 서글프게 생각했다. 덜 성가시고 더 파리지앵답고 너무나 자주 만나주는 애인으로…….     


늘 기다리고, 사랑하는 쪽에 서있던 폴은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시몽을 통해 일종의 위안을 받았다. 시몽에게로 가는 발걸음이 ‘서글프게’ 느껴졌다니 폴의 마음이 시몽에게로 움직였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로제와 만남을 지속하는 것도 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를 끊어내고 혼자가 될 자신은 없었던 폴에게 시몽은 그저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워줄 ‘누군가’였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사랑한다는 것과 외롭지 않다는 것은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사랑하는 것과 외롭지 않은 것은 완벽하게 별개의 마음이다. 사랑해도 외로울 수 있고,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의미 심장했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중략)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57쪽)          



작가는 제목을 반드시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폴이 시몽에게 받은 질문을 스스로 되뇌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몽이 던진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 짧은 질문은 폴이 그동안 잊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를 끌어당겼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자신이 과연 브람스를 좋아했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그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자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에는 눈을 감아버렸던 지난날들이 한순간에 되살아난 것이다.               


만약 폴이 로제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에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잊지 않고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조금은 다른 서른아홉이, 조금은 다른 연애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가서 폴은 끝내 시몽을 떠나보내고, 로제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 폴은 그 순간을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149쪽)”라고 표현한다. 이미 끝난 사랑을 다시 시작하면서 구원받은듯한 기분과 길을 잃은 기분을 동시에 느낀 것이다. 결국 폴은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은 또다시 외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폴은 왜 로제에게로 돌아간 것일까. 스물다섯 시몽의 사랑은 한낱 불장난(?) 같은 거라서, 자신의 나이에 적당히 어울리는 안정적인 로제를 찾아간 것인가? 과연 로제가 안정적인 사랑은 맞는가? 왜 또다시 충분히 짐작 가능한 불행의 길을 자초하는가?     


작가가 스물넷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하니, 서른아홉의 여자는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했던 건지. 그게 서른아홉의 폴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던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이 열린 결말 뒤에, 꼭 폴이 끝내는 로제와의 관계에서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고 지지부진한 그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폴이 로제를 사랑한 만큼, 폴이 폴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래서 꼭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내면의 외로움을 채우려 하지 말고,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줄거리 요약]

서른아홉, 실내장식 일을 하는 폴은 그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로제와 5년 넘게 연애를 하고 있다. 하지만 폴은 언제나 외롭고 고독함을 느낀다. 로제는 폴과의 연애가 만족스럽지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기에 폴의 외로움을 짐작하면서도 어떤 위안도 되어주지 않는다.


그런 폴에게 스물다섯의 매력적인 청년 시몽이 나타난다. 시몽은 폴이 일을 의뢰받은 반 데 베시 부인의 아들로 수습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폴에게 첫눈에 반한 시몽은 적극적으로 폴에게 다가가지만, 폴은 로제를 떠올리며 그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른다. 우연히 클럽에서 로제와 폴, 시몽이 만나게 되고, 로제는 시몽이 폴에게 마음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러나 로제는 메지라는 또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었고, 폴과의 관계가 삐걱거릴수록 메지를 더 자주 찾아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은 폴뿐이라고 생각한다.


시몽은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폴은 로제를 핑계 삼아 계속 시몽을 밀어낸다. 하지만 로제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폴은 자신에게 헌신적인 시몽의 마음에 기댄다. 결국 로제와 폴은 이별을 선택하고, 폴은 시몽과 동거를 한다.

시몽은 폴과 함께 지내면서도 폴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하고, 폴은 시몽을 안심시키면서도 로제를 완전히 잊지 못한다.


우연히 폴과 시몽, 로제와 다른 여자, 네 사람이 한 레스토랑에서 마주치게 되고, 폴과 로제는 서로에게 여전히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폴은 시몽에게 이별을 고하고, 시몽은 짐을 꾸려 폴의 집에서 나간다.


시몽이 떠난 뒤, 폴은 로제에게 일 때문에 약속에 좀 늦겠다며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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