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오스카 와일드)
얼마나 슬픈가! 나는 늙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그런데 이 그림은 항상 젊은 상태로 남을 것이 아닌가. 6월의 오늘보다 더 늙지 않을 게 분명한데 ……. 거꾸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47쪽)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아니 이미 선택이 내려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 인생이-인생이,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그의 호기심이-이미 그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 영원한 젊음, 다함이 없는 열정, 은밀하게 찾아오는 쾌락, 미친 듯한 기쁨과 거침없는 죄악,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누려야 했다. 그리고 그의 불명예의 모든 짐은 초상화가 대신 짊어지고 가야 했다. 이것이 선택의 전부였다. (167쪽)
아! 자만과 격정에 휩싸인 그 끔찍했던 순간에 그는 초상화가 세월의 짐을 지고 자신은 영원한 젊음의 순수한 광채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모든 그의 잘못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는 죄를 지을 때마다 확실하고 신속한 처벌이 뒤따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했다. 처벌 속에 정화가 있는 법. 인간이 정의로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옵소서>가 아니라 <사악함에 물든 우리를 쳐 죽여주옵소서>가 되어야 했다. (338쪽)
그 잘생긴 얼굴에, 미는 천재성의 한 형태지요. 실제로는 천재성보다 더 지고한 것입니다. 미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미라는 것은 햇빛이나 봄날, 혹은 우리가 달이라 부르는 은빛 조개가 검은 물 위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과 같이 세상의 위대한 사실들 가운데 하나요. (중략) 나는 미가 세상 모든 경이 가운데 최고의 경이라고 생각하오.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오. 이 세상의 진정한 신비는 가시적인 것이지, 비가시적인 것이 아니란 말이오.(41쪽)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울을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짓밟아 깨버렸다. 은빛 조각이 흩어졌다. 그를 파멸시킨 것이 바로 그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가 간절한 기도로 그토록 원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그를 멸망케 했다. 이 둘만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오점 없는 깨끗한 인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가면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의 젊음은 조롱거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청춘이라는 게 기껏해야 무엇이란 말인가? 설익은 풋내기 시절, 천박한 기분과 병든 생각으로 점철된 시절이 아니던가? 왜 그 청춘의 제복을 입었단 말인가? 젊음이 그를 망가뜨리지 않았는가?(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