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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19. 2020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내게 온 하워드의 선물

『하워드의 선물』(에릭 시노웨이, 메릴 미도우)

살면서 ‘후회’라는 것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한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성과를 얻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표한 바가 있으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생각한 것처럼 언제나 노력의 결과는 꽤 만족할 만했다. 그러니 ‘후회’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며 살았다. 스물하나, 대학교 2학년 때 첫사랑의 달콤 쌉싸름한 맛에 빠져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막상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자 두려웠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당장 등록을 하지 못할 게 뻔했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빚’은 너무나 무서운 단어였다. 휴학은 절대 안 된다는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 이대로면 절대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어. 내가 잘못했어. 대신 꼭 다음 학기부터는 장학금 놓치지 않도록 미친 듯이 공부할게. 그리고 한 학기 휴학한 것이 표시 나지 않도록 꼭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해서 졸업연도도 맞출게.”     


그때는 그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한 학기를 유예해야 했다. 처음으로 나의 나태함을 후회했다. 연애의 달콤함에 취해서 현실을 잊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결국 학기 중간에 휴학을 했고, 그 학기의 학비는 다음 학기로 이월이 되었다. 복학을 하면 다시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설픈 두어 달짜리 휴학을 통해 나는 나에게 ‘후회’라는 감정은 사치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눈앞의 현실을 가까스로 살아내야 할 처지에 지나간 시간을 후회할 틈은 없었다. 그때 이후로 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언제나 주어진 미션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약간은 자부했다. 그런데 하워드를 만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후회할 일도 없었다는 것을.



           

"조지처럼 능력 있고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게 있어."
"그게 뭡니까?"
"잠시 멈추는 것, 쉬지 않고 달리는 일에만 익숙하다 보니 멈추는 법을 모르는 게야. 솔직히 무조건 달리는 건 쉬운 일이지. 정해진 트렉만 도는 경주마를 생각해 보게. 무슨 고민이 있겠나? 그냥 골인 지점만 바라보고 무작정 달려가면 되잖아? 하지만 야생마들은 달라. 가야 할 곳이 어딘지, 피해야 할 곳이 어딘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천천히 달려야 할 때와 질주해야 할 때를 매 순간 판단해야 돼.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네.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56쪽, 멈추고,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시작하라)"         



나는 경주마였다. 타고난 신체 조건은 그리 좋지 않지만 불굴의 의지로 트랙을 달리는 경주마, 그래서 승률은 제법 좋은 경주마, 그게 지난날의 나였다. 생각하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렇게 열심히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중간에 멈춰서 생각하고 의심했더라면 절대 경주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야생마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하고 판단해서 했다고 믿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삶과 현실에 쫓겨 그저 열심히 했던 일들이었다.      


이제 나는 멈추었고, 생각해야 했다.     



정말 신비롭지?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 속에서 사과나무가 될 잠재력이 들어 있잖아. 전환점도 마찬가지야. 그 속에는 우리의 숨은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엄청난 ‘잠재적 동기부여 에너지’가 들어 있어. 물론 그것이 전환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테지. 그러니까 전환점이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야.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마법과도 같은 선물이지.(28쪽,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당신의 전환점이다)     

전환점이란 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은가, 아니면 방향을 바꿔야 할 때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아.(37쪽,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당신의 전환점이다)          


대부분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자리를 하워드는 ‘전환점’이라고 했다. 절망하고 좌절하며 넘어진 자리가, 바로 생을 송두리째 바꿀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가만 보니, 지금 내가 선 자리가 바로 전환점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지난 삶을 돌아볼 일이 없었고, 그저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던 나였다. 복직을 하더라도 지난 삶을 복기하는 것 외에 특별히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 내 안에서 처음 싹 틔우는 고민과 생각의 씨앗들이 바로 전환점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경주마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야생마로 새로운 삶을 설계할 절호의 기회 말이다.

     



하워드는 “우리는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자아를 추구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만들어나가고 있으며 ‘되고 싶은 나’를 향한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아에도 ‘가족적 자아, 사회적 자아, 영적 자아, 육체적 자아, 물질적 자아, 여가적 자아, 직업적 자아’라는 일곱 가지 자아가 있다고 했다. 각 자아에는 또다시 차원이 있는데 예를 들면 가족적 자아에는 ‘남편, 할아버지, 아들, 아버지’로서의 차원이 있다고 했다. (117쪽)


자아와 차원을 구분한 것이 무척 신선했다. 그 안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만들어간다는 것 또한 새로웠다. 한 번도 나 자신을 그렇게 구체적인 장면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모든 자아와 차원을 지배하는 ‘되고 싶은 나’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되고 싶은 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되고 싶은 나’를 너무 제한적으로 생각해온 습관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굳어져 온 습관 말이다. 학창 시절에는 수시로 ‘되고 싶은 나’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넌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언제나 나는 직업을 답했다. 때마다 여러 직업명이 등장했지만, 구체적인 직업명이었던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정 직업이 그저 ‘되고 싶은 나’였다.

      

특정 직업이 나를 수식하는 말이 되고 나자, 누구도 나에게 ‘되고 싶은 나’를 묻지 않았다. 이미 다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좋은 선생님’,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을 뿐, 본질적인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이제라도 나에게 물어보았다.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어들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 자체가 흐릿하니, 내 안의 여러 자아와 차원을 고려하며 내 앞에 놓인 퍼즐 조각들을 맞춰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꽤 오랜 고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망설이던 찰나, 하워드가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짜 답을 찾아봐야 해."
하워드가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에게 ‘우리끼리니까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자’고 말해 봐.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정말 굉장하지."(141쪽)          



하워드의 말처럼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물어보았다. ‘아직은 더 고민이 필요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천천히 그려나가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읽는 자기 계발서였다. 자기 계발서를 잘 읽지 않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책이었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과 너무도 딱 들어맞는 책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을 일 년 전의 내가 읽었다면 무척 지루해했을지도 모른다. 내 삶,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만났기에 이토록 소중한 ‘선물’처럼 읽어낼 수 있었다. 하워드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가슴 깊숙한 곳에 울림을 주었고, 자주 책을 내려놓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가장 울림을 주었던 문장 하나를 되새기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언제나 누군가가 정해준 길을 달리기에 바빴던 나에게 쿡, 하고 박힌 문장이다.       



모래 위를 두 사람이 걸었는데
발자국은 한 사람 것 밖에 없다면
정말 괴이하지 않을까?(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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