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인이를 위한 두 번째 진정서를 썼다. 매일 쓸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닿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거실 식탁에 앉아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펜을 붙잡고 문장을 써내느라 골머리를 앓는 나를 보며 신랑은 '쓸데없이 고민한다'라고 했다. 내 행동을 비난하기 위한 말은 결코, 절대 아니었고 내가 아무리 명문장으로 쓰더라도 판사들이 꼼꼼히 읽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신랑은 언제나 철저히 '실리' 중심인 사람이다. 결코 인정이 없는 사람은 아닌데(오히려 눈물은 나보다 더 많은데), 그것과는 별개로 어떤 일을 할 때 중심에 두는 가치는 '실리'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이 진짜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장 먼저 따진다.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 일이든, 공동체에 이익이 있는 일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현실적인 이익이 있다고 판단할 때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신랑과 비교하면 나는 '명분' 중신인 사람이다. 조선시대의 실학파와 성리학파에서 이야기하던 그런 실리와 명분의 개념과는 좀 다르겠지만, 실리 중심인 신랑에 비하면 철저히 명분 중심에 가깝다. 내가 하는 일이 내 판단 하에 '의미'가 있는 일인지가 중요하다. 그 일이 실제적인 이익이 되든, 되지 않든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덤벼든다.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부터도 그런 사람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2007년이었던가, 태안 바닷가에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태안 바닷가의 돌멩이들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모습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전국에서는 태안 바닷가의 기름을 닦기 위해 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꼭 내가 거기에 가서 함께 기름을 닦아야 할 것 같았다. 뉴스에서 저렇게 엉망인 바닷가를 매일 보여주는데 내 일이 아니라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영 불편했다. 태안 바닷가에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태안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도시였다.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에게 태안 바닷가에 기름을 닦으러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남자 친구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응? 뭐라고? 어딜 간다고?' 딱 그런 눈빛이었다. 누구랑 갈 거냐는 질문에 "혼자 가지. 그런데 같이 갈 사람이 어딨냐."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남자 친구한테 은근슬쩍 "같이 갈래?"라고 물었고, 남자 친구는 두말없이 함께 가준다고 했다. (신랑과 다른 사람입니다. 신랑, 미안.)
아무튼 그렇게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태안 바닷가 기름 닦기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이른 새벽에 출발을 했는데 워낙 먼 거리여서 점심 나절이 다 되어서야 태안 바닷가에 도착했다. 실제로 본 바닷가는 더 처참했고, 내 작은 몸에서는 열의가 품어져 나왔다. 우리 팀 말고도 수많은 고속버스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낯선 사람들끼리 어깨, 등, 허리를 부대끼며 겨우 엉덩이만 걸터앉은 채로, 해가 질 때까지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함께 간 모두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날의 기억은 내 삶의 책장 속에 아주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거길 혼자라도 가겠다고 생각했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제와 떠올려보면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겁이 많아 불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우는 투사는 못 되지만,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무엇이라도 해야만 살아지는 사람.
거의 3주를 붙들고 있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를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제일 마지막 문단이 가슴에 쿡 박힌다.
"도덕적인 참여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에게 더 많은 이상을 불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유망한 기반을 제공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390쪽)
내가 마음을 쏟고, 몸을 움직이는 사소한 일들이 도덕적인 정치 참여라 부를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그것이 조금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미약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일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