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칭찬일까? 말하는 이의 의도는 분명히 ‘칭찬’이었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은 그 말이 칭찬이라 믿었으니까.
돌이켜보면 내 삶은 ‘이 말’과의 투쟁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때 부모님의 이혼을 커밍아웃(?)한 뒤로,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어. 난 엄마랑만 살아.”
혹은,
“저희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엄마와만 살아요.”
라고.
내 말에 상대방의 눈빛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차게 흔들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몇 가지로 나누어졌다.
사과형
“아.. 그래? 미안. 몰랐어.”
화제 전환형
“그렇구나. 아, 있잖아. 어쩌고저쩌고……”
공감형
“그렇구나. 엄마가 고생 많이 하셨겠다.”
"진짜? 나도 그런데!"
칭찬형
“아, 진짜? 아빠 없이도 잘 자랐네!”
대체로 먼저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도 내 상처를 헤집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마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이혼이 내게는 별다른 상처가 아니었다. 진짜로!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쓰는 걸로.^^) 하지만 상대는 머쓱한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대체로 두 번째 유형인 화제 전환으로 태세를 바꾸곤 했다.
처음부터 두 번째 유형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화제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별다른 대꾸 없이 바뀐 화제로 대화를 이었다. 괜히 내가 더 머쓱해져서는.
세 번째 유형은 공감형이었는데, 사실 이혼가정에서 자라며 가장 힘든 사람은 양육을 맡은 부모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엄마의 삶을 공감하는 유형은 대체로 엄마로 살아본 여자 어른들이 많았다. 나는 “맞아요, 엄마가 고생 많이 하셨죠.”라며 씩 웃고 말았다. 혹은 자기도 그렇다고 하는 경우에는 이후 대화가 별다른 무리 없이 이어지곤 했다.
네 번째 유형이 내게는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말이었다. “아빠 없이 잘 자랐네!”라는 말. 어릴 때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엄마도 드러내 놓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어디 나가서 내가 ‘아빠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늘 전전긍긍하셨다. (눈치 빠른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영화 ‘친구’에도 나오지 않는가. 아이의 잘못에 선생님의 첫마디가 ‘느 아부지 뭐하시니?’라니.) 엄마의 전전긍긍을 알아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아빠 없이도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 칭찬이 내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 여겼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어린 시절 나는 아빠 없이도 잘 자랐다는 그 말에 그토록 목이 말랐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내가 교사가 된 이후였을 것이다.) 그날도 누군가에게서 그 말을 들었는데, 전과 달리 기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처럼 마냥 좋지도 않은, 이 기분이 대체 뭘까 싶었다. 그리 오래 생각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 말속에 담긴 편견이 불현듯 실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아빠 없이(혹은 엄마 없이, 엄마 아빠 모두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야 하는 걸까. "아빠 없이도 잘 자랐네!"라는 말에는 말하는 사람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전제가 있었다. 부모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가 없을 경우에는 ‘잘 자라기 어렵다’는 전제가. 어쩌면 나는 그동안 칭찬받지 않을 일도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칭찬받았을지 몰랐다. 내가 그 일을 잘 해내서 인정받는 것보다, '아빠도 없이' 잘 해내서 더 큰 인정을 받았던 걸지도.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우리 엄마는 그토록 엄하게 나를 키웠던 거겠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아빠 없이도 잘 자랐네.”라는 말이 기쁘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아니 어쩌면 꽤 클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은 내 삶의 성취를 ‘아빠’의 부재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세상의 편견을 지울 방법이 내게는 없었다. 나를 둘러싼 사실은 이혼가정의 자녀였고, 세상은 이미 그런 사실에 굴레를 씌워놓았으니까.
넋두리하듯,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말할 데가 없어서 글을 썼다. 이혼을 준비하시는, 혹은 이미 감행하신 부모님들도, 부부 사이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면 이혼하실 수 있다.(이혼이 흠이 아닌 세상이라지 않는가.) 이혼 자체가 자녀에게 죄책감을 가질 일은 결코 아니다. 이혼으로 인한 상처를 스스로 회복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혼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자존감은, 어쩔 수 없이 이미 상처 입은 상태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중심을 잘 잡고 아이를 키운다면 충분히 괜찮아진다. 회복되고 극복될 수 있다. (내가 그 증거(?)다!) 양쪽 부모와 모두 함께 산다고 해서 아이의 자존감이 무조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이건 많은 아이들을 만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진실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앞으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이혼가정이든, 미혼모. 미혼부 가정이든, 특정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어떤 형태의 가정이든,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고, 성취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내가 만날 아이들에게 그들이 가진 배경을 이유로 어떤 편견도 갖지 않으리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