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팔이 말썽이다. 등 뒤에서 손깍지를 낀 후 팔을 들어 올리라는데 도저히 올라가지를 않는다. 유튜브 속 요가 선생님의 팔은 쭉 뻗어 시원하게 올라가는데 내 팔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한 달 반째 요가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내 몸인데 왜 이렇게 내 맘대로 안 되는 거야! 겨우 이런 정도의 동작도 안 된다고?’였다. 그냥 보기에도 대단히 어려운 동작이면 포기라도 쉬울 텐데, 그렇지 않은 동작마저도 좀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팔을 뒤로 들어 올리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동작이 전혀 되지 않을 때 속 좁은 나는 자신에게 성질이 났다.
'몸이 이렇게 굳어가는 동안, 대체 넌 뭘 했니?'
그러고 보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주로 나는 자신을 원망하는 쪽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원망할 대상을 찾기도 했다. ‘저 사람이 똑바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하필 오늘 모든 일이 겹쳐서’ 하며 바깥에서 원인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긴 했다. 그러나 끝내는 모든 원인이 나에게로 귀결되었다. 결국 ‘내가 똑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이 일 저 일에 마구 욕심을 부려서’, ‘내가…’,‘내가…’ 그렇게 나 자신을 과녁 삼아 마구 화살을 쏘았다. 100% 외부에 원인이 있는 경우에도, 끝내는 그랬다.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점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내가 노력하면 된다’, ‘더 애쓰면 할 수 있다’, ‘나만 변하면 된다’, ‘나만 잘하면 된다’ 되뇌게 되었고, 실제로 노력하고 애쓴 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스스로를 다그친 만큼 발전이라는 걸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자 내가 나의 감시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건 외부의 시선과 평가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내 눈치를 살피는 어이없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애쓰고 아등바등하는 삶은 자주 버거웠다. 그걸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라 그렇게 살지 않는 법을 알지 못했다.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온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몸이 굳어가는 동안, 그렇게 살았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대신, 다그치고 채찍질하면서. 혼자 있어도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한껏 의식하면서. 마음이 언제나 쪼그라들어 있는데 몸이 안 쪼그라들 재주가 있었을까.
이어지는 동작에 집중하지 못한 채, 온갖 잡념에 시달리며 겨우 오늘의 요가를 마쳤다. 요가의 마지막 동작, 사바사나(모든 근육을 이완한 채로 가만히 누워 호흡을 이어가는 동작이다.)를 하는데 요가 선생님의 잔잔한 목소리가 울렸다.
‘오늘 했던 동작들 중에 잘 안 되는 동작도 있었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오늘 나를 위해 요가를 하는 시간을 내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거예요. 자기 자신을 칭찬해주세요,’
나를 원망하던 목소리를 꿀꺽 삼켰다. 깊은 호흡을 후- 내뱉는데 찔끔 눈물이 났다.
그래, 팔 좀 안 올라가면 어때. 몸의 근육들이 이렇게 굳어갈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 거야. 잘할 필요 없어. 잘하려고 너무 애쓸 필요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