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by 진아

“진아야, 잘 지내지? 오랜만에 카톡을 들여다보다가 너 프사 보고 축하할 일이 생긴 것 같아 인사 남긴다. 너무너무 축하해. 역시, 진아야, 멋지다.”

뜻밖의 카톡 하나에 종일 마음이 달떴다. 발신인은 고등학교 때 친구인 희야였다. 프로필 사진에 출간한 책 사진과 함께 ‘출간, 작가가 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올려두었는데 그것을 보고 실로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오래 묵은 인연이지만 오래 닿지 못한 인연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하려면 이제는 한 발쯤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인연.




희야와는 고1 때 같은 반이었다. 그녀와 나는 각자 따로 친한 무리가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희야가 살고 있던 집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잠깐 살았던 집이었다. 인연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절묘한, 운명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살고 있던 집은 희야의 집에서 채 3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 오르막에 있었다.


우리는 그 운명을 확인한 후, 매일 아침 등교를 함께 했다. 서로 친한 친구들이 다르다 보니 학교에서의 생활과 하교 후의 생활은 전혀 달랐는데, 등교만은 꼭 함께였다. 우리는 아침마다 젖은 흑발의 긴 생머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로 만났다. 교복 외투의 단추를 잠그며 내리막을 달렸고 함께 버스를 탔다. 아슬아슬한 시간이면 둘이서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아 택시를 타기도 했다.


고2, 고3에 올라가서도 우리의 친구들은 교집합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어쩐지 더 견고해지는 느낌이었다. 고3 때 친한 친구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학교에 못 가겠다며 힘들어하던 나를 교실까지 데리고 간 친구도 희야였고, 그 사건으로 내가 점심을 굶을까 봐 굳이 우리 반까지 와서 급식을 함께 먹어준 친구도 희야였다.

희야는 주변 남학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아주 예뻤는데, 성격까지 좋아서 남녀를 불문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 희야와 가까운 친구가 된 것부터가 내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나를 무척 특별하게 대해주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멋지다’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는 그다지 ‘멋진’ 부류가 못되었다. 대단히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예쁜 외모도 아니었고, 무엇하나 내어놓을 만큼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도 희야는 내가 무언가를 하기만 하면 ‘내 친구 진짜 멋지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했고, 각자의 대학 생활에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서로를 잊고 지냈다. 3분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틈을 내어주지 못할 만큼, 다른 삶이 각자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서로에게 서운해하지 않았다. 멀어졌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믿었고, 언제나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희야가 스물넷에 취업을 해서 서울로 갔고,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한참 대학원에 다니며 임용을 준비하던 때에 희야는 첫 아이를 낳았고 엄마가 되었다. 내가 임용에 합격하고 첫 사회생활의 쓴맛을 볼 때 희야는 꽤 능력 있는 남편을 내조하며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살았고, 첫 아이를 예쁘게 키워내고 있었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에 희야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가 엄마가 될 때쯤에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중국으로 갔다.


희야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희야의 결혼식이었는지, 그 뒤로 한 번 더 보았는지. 그것조차 가물가물하다. 만약에 결혼식에서 보았다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13년 전이라는 말이다. 그 뒤로 한 번쯤 더 보았다고 하더라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긴 것만은 확실하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희야와 연락이 닿았던 것은 코로나가 터지면서였다. 중국 우한 지역으로부터 연일 코로나 관련 소식이 전해지던 때, 문득 중국에 있는 그녀가 떠올랐다. 아주 오랜만에, 약간의 용기를 내어 카톡을 보냈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고, 연락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서로의 근황을 전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움이라는 게 그리도 갑자기 일상을 덮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희야와 연락을 주고받은 후로 며칠간 그녀가 꿈에 나타났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듯이 그녀가 보고 싶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오르내리던 등굣길이 생각났다. 그러나 지나간 일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또 일상에 쫓기어 서서히 그리움을 잊어 갔다.




“진짜 나이 들어가니 네가 너무 보고 싶네. 추억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희야의 메시지는 이번에도 내 그리움에 조약돌을 던졌다. 먼 곳에 있는, 아득한 인연이 건네 온 ‘보고 싶다’는 말이 일으킨 파장은 꽤 컸다. 누군가의 그리움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어쩐지 감동적일 만큼 뭉클했다.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우리 그때 참 예뻤어.”


보고 싶다는 말에, 나도 그러하다고. 나도 너만큼이나 너를, 그리고 지난날의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새삼 누군가와 아무런 계산 없이 보고 싶다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생각했다. 너의 그리움과 나의 그리움이 같은 곳을 향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의 그리움과 그녀의 그리움이 만날 날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감사한 하루가 될 것이다. 우리의 오랜 그리움이 만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 겨울을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살면서 그리운 순간이, 그리운 이가 있을 것이다.

망설임을 멈추고 용기 내 보시길.

참 오랜만에 네가 생각났다고, 여전히 네가 보고 싶다고.


어쩌면 생각지 못한 메아리가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

나도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나도 여전히 네가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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