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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11. 2021

『마음챙김의 시』(류시화 엮음)

가끔 누구의 위로도 닿지 않을 때, 아무와도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시를 읽는다. 소리 내어 읽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녹음해서 가만히 듣는다. 시집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훨씬 더 울림이 크다. 행과 연의 간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고, 마침표와 쉼표, 느낌표와 물음표에 따라 시의 감정을 읽는다. 그러다 후드득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요동치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기도 한다.


시집에는 '정독'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낼 필요도 없다. 그때그때 제목 따라, 스치다 눈에 밟히는 시어 하나 따라 한 편도 두 편도 여러 편도 읽어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시를 만나게 된다.


학창 시절에 시를 분석하며 공부했던 기억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시를 읽기 두려워한다. 해석하려 들고 의미를 파악하려 드니 함축적인 시가 낯설고 어려운 건 당연하다. 시는 '서정'의 문학이다.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는 문학 갈래이다. 시를 읽으며 내 마음에 와 닿는 감정을 느끼면 그만이다. 어떤 시가 누군가에게는 눈물겹게 슬프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 챙김의 시는 류시화 시인이 15년 만에 낸 시집이다. 덕분에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작가의 인지도에 기댔다 할지라도, 시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베스트셀러에 시집이 속해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시집에 담겨있는 시들 중 마음에 닿는 것이 꽤 있었다. 시인이 직접 쓴 시는 아니었지만 여러 계층,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있어서 그대로 또 좋았다.


실로 많은 이들에게 마음 챙김의 순간이 필요한 날들이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던 지난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을 논하기엔 아직 모든 것이 그저 어려운 시기다. 마음은 자주 곤두박질치고 쉽사리 비상하지 못한다. 그럴 때 짧은 시 한 편이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크다.


나 역시도 오랜만에 시를 읽으며, 제목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마음을 가만히 쓸어 모아 챙겨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음에 와 닿았던 짧은 시 몇 편을 소개한다.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 잘랄루딘 루미



위험

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 엘리자베스 아펠



흉터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 네이이라 와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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