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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21. 2021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

부제 :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스스로 ‘헬조선’, 즉 지옥이라 부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업률은 끝없이 치솟고 있고, 출산율은 이미 세계 최하위 국가로 치닫고 있으며, 부동산값은 어떤 정책에도 속수무책으로 날뛰고 있다. 다양한 입시 제도를 통해 경쟁을 줄여보겠다고 시작한 학생부 전형은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어, 도리어 정시 확대라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다시 불러왔다. 입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그럴수록 입시 비리와 부정은 더욱 치밀한 방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빽 없고 돈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알바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다 목숨을 잃는 일도 다반사이다.


이런 모든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네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더 노력하지 않아서……’, 그 말로도 모자라 심지어 ‘그럼 더 예쁘든가’, ‘억울하면 부잣집에 태어나든가’, ‘부모의 능력도 능력이지’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죽어라 노력한 사람에게는, 혹은 예쁜 사람에게는, 부모가 부자인 사람에게는 행복한 사회일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1위이다. 성장률도 아니고, 행복지수도 아니고, 자살률이 1위이다. 이곳에서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라는 말이다. 부자들도 살기 어렵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도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들도 살기 어렵다. 눈부신 외모의 연예인들이 한 해에 몇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온갖 정신질환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행복하기 쉽지 않다. 얼마나 더, 언제까지 그 노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      


이쯤 되면, 이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문제의 스케일이 크다. 결국 사회 시스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시스템의 것이었어야 할 수많은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며 여기까지 버텨왔다. 수많은 개인의 희생으로 우리나라는 2019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만이 속할 수 있는 30-50 클럽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 클럽은 전 세계에서 불과 일곱 국가(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만이 속한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불행을 진단하고 그 원인을 파헤치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출발은 저자인 김누리 교수가 2019년 10월과 11월에 JTBC의 ‘차이 나는 클라스’에서 ‘독일의 68과 한국의 86’,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두 주제로 했던 강연이었다. 즉 이 책은 그 두 강연의 내용을 풀어쓴 강연록이다.




저자가 대면한 1980년대 후반 독일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을 감수하는 개인이 없음에도 독일 사회는 너무나 잘 돌아갔고, 교육의 수준은 높았으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이었다. 저자는 독일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왜 우리나라와 이토록 다른 모습일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1장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와 제2장 ‘대한민국의 거대한 구멍’에서는 세계적인 혁명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68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68 혁명은 저자가 독일을 거울삼아 찾아낸,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불행한 이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68 혁명이란 196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서유럽의 국가들의 시작으로 동유럽, 미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세계를 강타했던 민주주의 혁명이다. 이 혁명의 핵심 구호는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기실 거대한 억압의 체제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 혁명의 목적이었다.


68 혁명을 계기로 독일 역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운 독일’로 거듭났다. 대학 학비를 비롯한 생활비 전액을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제도(바푁)와 같은 복지제도의 정착,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으로서 비판 교육의 실시,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고 실현해나가는 정치 등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인 제도와 인식이 68 혁명을 계기로 자리 잡아 나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68 혁명이 도달하지 못했다. 전 세계를 휩쓴 혁명의 불길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닿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베트남 전쟁에서 그 요인을 찾고 있다.


68 혁명 사실 베트남 전쟁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혁명이다. 당시 젊은 세대가 매체를 통해 본 베트남 전쟁의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미국이라는 대국이 너무나 작은 베트남이라는 국가에 가한 물리적 폭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그 폭력에서 말할 수 없는 도덕적 충격을 받았고, 결국 그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으며 끝내 혁명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전 세계가 반대하는 베트남 전쟁에 지상병을 파병한 유일한 나라였다. 그러니 베트남 파병을 결정했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68 혁명의 불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68 혁명을 일으켰던 68세대를 대체할 만한 세대는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86세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68세대에 비해 그 한계가 뚜렷하다. 86세대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이나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오직 눈앞의 군사독재를 어떻게 타도할 것인가, 즉 도덕적 결단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결국 86세대에 의해 민주 정부가 들어섰고, 우리나라는 일정 부분(정치적 측면에서) 민주화를 이루긴 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여전히 자리잡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86세대의 성과는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에 국한되어 있으며 ‘사회 민주화’, ‘문화 민주화’, ‘경제 민주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제3장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찾아서’에서는 저자가 역설하는 우리가 불행한 또 하나의 이유가 다루어진다. 그것은 바로 기이할 정도로 극단적인 의회 구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은 300여 명 중 290명 정도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들로 전체 의원 중 98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2013년~2017년 독일 연방의회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4.8퍼센트의 정당 지지율을 얻어 의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의회 구성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더욱 실감이 난다. 독일의 자유민주당이 의회에 입성도 못 하는 사이, 독일 의회를 차지했던 다른 정당에는 기독교민주당(현재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소속된 정당), 사회민주당, 녹색당, 좌파당이 있었다.

      

기독교민주당 :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여 시장경제의 활력과 효율성은 활용하되, 시장경제가 몰고 오는 핵심적인 문제, 즉 실업과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

사회민주당 : 시장경제의 효율성은 인정하지만,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는 영역, 즉 교육, 의료, 주거 영역은 시장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

녹색당 : 시장경제는 용인하지만 그것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

좌파당 :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입장


독일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에는 진보라 부를 만한 정치 세력이 전혀 없다. 저자 역시도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진보와 보수의 양당 구조가 아니라 극우와 보수의 과두지배 체제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정치 구조상 제대로 된 입법이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입법부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니,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여러 법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하지 않은 불행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4장 '우리는 함께 웃을 것이다'에서는 앞서 살핀 기형적인 국가, 부조리한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남한과 북한의 냉전체제를 지적하며,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냉전체제는 군사 주권을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한국의 국가 주권을 훼손했고,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을 조성하여 정치 구도를 기형화했으며, 재벌 독재의 경제 질서를 만들어 경제 정의를 파괴했고, 권위주의적 성격을 심어 한국인의 성격구조를 왜곡했다(199쪽)’고 설명한다. 그로써 당장에 시급한 것은 통일 자체가 아니라 냉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독일 역시 분단과 통일의 경험을 지닌 국가이므로, 독일의 통일 과정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도 끝내는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내 눈앞에 닥친 삶을 살아내느라 ‘우리’를 돌아볼 만한 넓은 시야를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에게 닥친 불행을 그저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그랬다고만 생각했던지,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그저 나만의 ‘소확행’에 만족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던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 하나의 변화로 달라질 세상은 아니겠지만, 나와 같이 세상의 불행에 무지했던 한두 사람의 관심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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