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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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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11. 2021

첫, 출판 계약서를 썼다

사람 냄새나는, 따스한 글로 가득한 첫 책을 써내야지

지난 토요일 출판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은 겁이 났고 그보다 조금은 더 설렜다.      


출판이라니..저자라니..발행이라니..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 2019년 11월 16일부터 내 인생은 참 많이 달라졌다. 두 아이를 2년 터울로 낳고 내 시간은커녕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가지 못하던 시간이 3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지쳤고, 가끔 버거웠다. 둘째가 10개월이 되던 그때, 이제는 어떻게든 내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아마 둘째가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첫째가 어린이집에 무난하게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을 때라 그랬을 것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많은 돈이나 시간이 들지 않으면서,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으며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무엇일까. 고민은 깊지 않았다. 독서가 가장 적합한 일이었다. 책 읽기는 육아 틈틈이도 해오고 있던 것이라서 막연하게 ‘독서’를 하겠다는 것은 꿈이 될 수는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꽤 많은 곳에서 ‘독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독서 모임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이유는 딱 하나, 모임의 선정 도서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은 모임 장소까지 거리가 꽤 멀었다. 차로 움직여도 40분에서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한 시간 반의 독서 모임을 위해 왕복 두 시간을 소요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이 아니면 결국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토요일 오전에 있었기에 아이들은 신랑이 봐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신청 문자를 보내고 모임 회비를 입금했다. 첫 모임까지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첫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그때의 묘한 활기와 떨림이 생생하다.      


첫 모임 날짜가 바로 2019년 11월 16일이었다. 출판사를 운영하시면서 직접 창작 활동도 하고 계신 작가님이 운영하는 독서 모임이었다. 편안했고 따듯했다. 한 시간 반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흘렀다. 그때부터 매달 독서 모임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때론 버거운 육아를 버텨낼 힘을 얻었다.      


2019년 12월 26일, 독서 모임을 운영하시는 작가님이 관리하는 네이버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름하여 ‘자꾸감사이벤트’를 하신다는 거였다. 요지는 새해가 되면 다들 새로운 결심을 하는데, 혼자 하면 지켜내기가 힘드니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새해 결심 한 가지를 카페에 공유하고, 새해가 밝으면 매일 밤 12시까지 결심을 실천한 모습을 인증하자는 것이었다. 그맘때 오랫동안 써오던 일기를 둘째 임신과 동시에 손에서 놓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진아, 매일 일기 쓰기 신청합니다.’     


신청글을 올리고는 몽글몽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새해가 되기 전이었지만 그날부터 바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2020년 작년 한 해 동안 딱 이틀을 빼놓고 매일 일기를 썼다. 자꾸감사이벤트는 작년 한 해 동안 3번에 걸쳐 진행되었고, 나는 카페 회원 중에서 유일하게 세 번의 시즌을 모두 완주한 사람이 되었다.      


그사이에 독서 모임도 2개 더 늘렸다. 기존의 토요 독서 모임에 수요, 일요 독서 모임까지 총 세 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수요일 밤이면 과학 독서 모임을, 토요일과 일요일 밤이면 인문학 독서 모임을 했다. 모두 같은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것이었다. 거의 일 년 내내 그 작가님 뒤를 졸졸 쫓아다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작가님이 좋았다. 처음 받았던 느낌, 편안했고 따듯했던 느낌은 오랫동안 여전했다. 작가님이 열어주는 문에 발만 디디면, 그 용기만 내면, 어제와는 다른 ‘나’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계속 작가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그러면서 부서지고 다시 쌓아 올리며 일 년 동안 부지런히 나를 갈고닦았다.      


그 과정에서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해서 주말 한두 번을 빼놓고 거의 매일 글을 발행했다. 어떤 날은 육아일기를, 어떤 날은 자작시를, 어떤 날은 독서 노트를 발행하면서 매번 생각했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지. 거짓말하지 않는 글을 써야지. 내가 뒤를 쫓던 작가님도 내가 브런치 활동을 하는 것을 아셨다. 늘 응원해주셨고 격려해주셨다. 그것에 힘 입어 지치지 않고 썼다.      




2주 전쯤,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셨다면서 말씀하셨다.      


“진아님, 이제 책 한 권 쓸 때 되지 않았어요?”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라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순간 멍해졌다.      


“내년에 휴직 연장한다면서요. 그러니 지금이 딱 좋은 기회예요. 해오던 게 있으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얼마든지 도와줄게요.”     


작가님은 출판사 대표의 입장에서 나에게 출판 제의를 하고 계셨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나에게 말이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은 뒤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책을 낼 수 있을까. 누군가 돈을 지불하고 사더라도 아깝지 않을, 좋은 책을 쓸 수 있을까.      


며칠 뒤 작가님과 줌(Zoom)에서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결국 작가님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작가님 입장에서는 큰 모험이 될 일이었다. 작가님은 그동안 써둔 글도 많을 테니 그걸 잘 골라서 다듬어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첫 책을 내게 된다면,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묵혀두었던 이야기라 브런치에도 발행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건 바로 엄마 이야기였다. 평생을 홀로 고생하며 나를 키워준 우리 엄마, 엄마라는 이름만 불러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우리 엄마, 엄마의 가난이 내게 대물림 되지 않도록 뼈를 깎고 살을 발라 나를 위해 살아온 우리 엄마, 그런 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결국 원고 한 편 없이, 출간 기획서도 없이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작가님은 오직 ‘나’라는 개인에 대한 신뢰로 출판 계약서에 사인을 하셨다. 계약서를 들고 집으로 오는 길, 책을 낸다는 기쁨보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신뢰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기쁨이 훨씬 더 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해 찬 바람이 불어올 때쯤 세상에 태어날 나의 첫 책, 마치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을 확인하고도 정말 뱃속에 내 아이가 자라고 있는지, 건강한지, 알 길이 없어 두렵던 그때,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에 그저 뭉클하고 감사하던 그때와 꼭 같은 마음이다. 계약서를 보고 또 보면서도 내가 정말 책을 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빈다. 그리고는 예상 발행일을 확인하며 마치 출산예정일을 확인한 것처럼, 조금은 두렵고 많이 기쁘다.     


아무것도 없는 나를,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무작정 믿어주신 작가님이자 출판사 대표님과 브런치에서 글마다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댓글로 마음을 보여주신 많은 구독자님들께 무한히 감사한 밤이다. 그분들께 사람 냄새나는 따스한 글들로 가득 찬, 나의 첫 책을 선물해드리고 싶은, 꼭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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