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마음이 훈훈해서 영하의 날씨에도 두꺼운 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 날이었다. 어제 출판 계약을 했다는 글을 올린 뒤 많은 구독자분들께 축하와 응원을 받았다. 덕분에 믿음과 용기를 얻었다. 솔직히 출판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올렸던 이유는 자랑을 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설렘을 고백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지난 토요일에 계약서를 쓰고 와서부터 종일 마음이 불안하고 부담감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기획서부터 막혀서 ‘내가 왜 책을 써야 하지?’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했다.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너무 성급하게 사인을 했던 건 아닐까, 원고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비난받는 글을 쓰면 어쩌지, 무가치한 글을 써버리면 어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계약을 물러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을 즐기고, 일단 시작하고 보는 나로서는 이 부담감이 실로 낯설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막연하게나마 언젠가 책을 내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니 뒷걸음질 치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좋은 일이고,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작아지는 내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계약에 관련된 글을 쓴 것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브런치에, 마치 공표하듯 써버리고 나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테니 어떻게든 써내겠지 싶었다. 정말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발행 버튼을 누른 글이었다. 하지만 그 글을 발행한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나는 조금 울었고, 무척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준으로 브런치에 나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은 이백팔십한 분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많은 숫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쓴 글의 수보다 구독자 수가 한 분만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가 쓴 한 편의 글에 공감하여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는 분이 단 한 분씩만이라도 늘어간다면 충분히 행복한 글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발행한 글이 205편이니, 구독자 수는 이미 내 기대를 웃돌고 있다.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구독자 분들 중에서도 꾸준히 나의 글에 관심을 보여주시고, 댓글로 마음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신다. 내가 그날 발행한 글이 독서노트이든 육아 에세이이든 시이든 가리지 않고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그렇지 않고 읽어만 주셔도 물론 너무너무 고맙다!) 어제 그분들을 비롯해서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주신 분까지 많은 분께서 응원을 해주셨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신 것도 모자라 함께 설레 주시고, 이미 출간을 하신 어떤 작가님은 자잘한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돕겠다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브런치, 이곳의 온기를 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오직 공통분모는 글을 쓴다는 것밖에 없는 그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마음들이 너무나 귀하고 고맙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공통분모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일지도 모른다. 글에는 진심이 묻어날 수밖에 없으니, 글로 맺어진 인연은 거짓으로 포장하기가 도리어 어려울 것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만날 수 없겠지만 가까이 있는 친구들보다 더욱 마음을 터놓게 되는 건, 정말이지 글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너무나 내밀한 나의 속내를 다 까발려서 보여주는 글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솔직해야 하나 생각한 순간들도 많다. 내가 살아온 세월, 나의 가정사, 현재 두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리는 여러 감정들을 이렇게 가감 없이 써서 공개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숨길 수 없었고, 숨겨지지도 않았다. 솔직한 글, 진심이 담긴 글을 썼을 때라야 발행 버튼에 손이 갔다. 조금이라도 포장을 하거나, 그럴싸하게 꾸민 글들은 퇴고 과정에서 어김없이 삭제되곤 했다.
아마 나와 소통하는 작가님들의 글도 그럴 것이다.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분들의 삶 속에 나도 모르게 발을 들인 느낌이 든다.
‘아, 오늘 이 분은 외로우셨구나.’
‘이 분은 무척 행복하셨구나.’
‘이 분은 그리워하는 분이 계시는구나.’
‘이 분의 이야기는 꼭 내 얘기 같구나.’
그분들의 삶에 노크하며 위로와 공감, 축복과 응원의 댓글을 남길 때면 마치 오랜 친구에게 짧은 쪽지 편지를 쓰는 기분이 든다. 이런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참 귀한 인연이다. 오월의 햇살보다 따듯한 인연이다. 시골집 아랫목처럼 온기로 그득한 인연이다. 받은 마음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좋은 글로, 책으로 보답하고 싶다. 더불어 그분들의 진솔한 삶의 한 페이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다. 늘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위로하며 글로 맺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