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Mar 30. 2021

출판을 한다는 것

*이 글은 안부 인사이자 넋두리입니다.


요즘 나는 내 인생 첫 책을 쓰고 있다. 엄마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지만, 쓰다 보니 결국 나의 성장기였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랐고, 생활보호대상자였을 만큼 가난했던 내가 건강한 마음을 지닌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감사히도 작은 지역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안을 받았고, 출판사에서는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1월 초에 출판 계약서를 썼고, 초고를 4월까지 쓴 후, 퇴고의 과정을 거쳐, 9~10월쯤 출판하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것인가. 초고 쓰기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못 쓴 게 아니라 빨라도 너무 빨리 다 써버린 것이다. 2월 중순, 초고를 탈고하고야 말았다. 나도 내 안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있는지 몰랐다. 어디 써둔 글을 모은 것도 아니고, 오직 ‘엄마’라는 주제로 34개의 수필을 쓰는데 겨우 한 달 하고 일주일쯤 걸렸다. 거의 매일 한 편씩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업으로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나에게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초고를 쓰기 전,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적당히 분류해서 소제목(가제이긴 하지만)을 붙인 뒤 목차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더 쓰고 싶은 내용들이 생겨서 무엇을 빼내야 할까 고민을 하면 했지, 쓸거리가 없어서 망설여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렇게 빨리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초고는 초고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조금 어색한 표현이나, 부족한 내용, 어휘 선정의 문제까지 모두 ‘퇴고’에 가서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쓰고 본 것이었다.

     

다행히 지난 1년간 매일 일기를 써왔고, 브런치에도 거의 매일 글을 써온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주제가 정해지자 A4 한두 장쯤 ‘일단’ 쓰는 건 어려움이 없었다. 초고를 예정보다 두 달이나 앞당겨 탈고하고 보니, 출간 예정일이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이미 다 큰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기분이랄까.      


‘일단’ 쓴 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출판사와 다시 이야기를 해서 퇴고 기간도 앞당기고, 출간일도 앞당기기로 했다. 하지만 퇴고를 하면서 깨달았다. 출간일을 결코 앞당길 수 없다는 사실을.

      

대단히 좋은 책을 쓰겠다는 포부도, 책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다만 진솔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마음과 내 책을 사서 읽어줄 독자에게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는 다짐,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나의 글에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퇴고가 어렵고 힘들었다.      


‘퇴고’는 ‘고쳐쓰기’가 아니었다. ‘퇴고’는 ‘다시 쓰기’였다. 초고에서 문맥이 어색한 것을 바로 잡고 어휘나 맞춤법 등을 고치는 것 또한 ‘퇴고’의 과정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몇 번의 퇴고를 거친 후 마지막 단계에서 확인할 문제였다. 첫 퇴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다시 쓰는 과정이었다.      


초고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이상은 쓸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고칠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을 했고, 최고의 단어를 골랐다. 그래서 완벽하진 않을지 몰라도, 이토록 초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퇴고를 하면서 한두 번의 퇴고만으로 출간을 한다면, 기필코 부끄러운 책을 내어놓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죄송한 마음을 무릅쓰고 출판사 대표님과 다시 논의를 했다. 아마 대형 출판사였다면 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형 출판사에서는 내 글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이쯤에서는 그것이 고마울 지경이다. )     


작은 지역 출판사라 기획 출판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첫 출판 계약부터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루어진 것이라 대표님은 내 뜻에 전적으로 맞추어 주셨다. 대표님 역시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신지라 첫 책 앞에 주저하는 내 마음을 백번 천 번도 더 이해해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덕분에 지금, 낮에는 내내 두 아이와 열심히 씨름하고, 늦은 밤에는 초고를 한 편씩 새로 써 내려가고 있다. 이런 글로 책을 낼 생각을 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이 퇴고가 끝나면, 한두 달쯤 하드디스크에 묵혀두었다가 다시 한번 꺼내어 볼 셈이다. 그럼 또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초고를 쓰고 퇴고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브런치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 조금 여유를 갖고 다시 열심히 시를 쓰고, 독서 노트를 쓰고, 일상도 기록해보려 한다. 댓글로 출간 준비를 물어주시고, 힘내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써볼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