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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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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8. 2021

첫 책의 원고를 퇴고하다가

초고에서 1차 퇴고를 거친 후, 한 달가량 푹 묵혀두었던 첫 책의 원고를 다시 꺼내보는 중이다. 장독에 묻어만 놓아도 익어서 맛이 드는 김장김치 같으면 좋으련만, 다시 꺼내본 글은 맛들긴커녕 떫은맛을 냈다. 출판사 대표님은 이제 이쯤이면 전체 구조는 두고 문장을 다듬고 표현을 정제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여전히 구조부터 엉성해 보이고, 소제목도 어딘지 모르게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래서 출간 예정일에 과연 출간을 할 수 있을지.

    

계약서를 쓸 때만 하더라도 출간 예정일은 10월경이었다. 초고를 너무 빨리 완성한 바람에 출간 예정일을 5월로 당겼지만, 퇴고를 시작한 후로 여기저기 구멍이 너무 많이 보여 다시 미루어두었다. 며칠 전, 출판사 대표님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여러 여건을 고려하여 9월 15일 즈음으로 출간일을 확정했다. 이제는 다시 일정을 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추석 연휴를 한 주 앞둔 어느 날, 세상에 나올 나의 첫 책. 막상 출간일을 못 박고 나니, 마음이 두근거려 원고를 다시 읽는 것조차 겁이 났다. 어쩌면 우리 엄마 삶의 회고록 같고, 어쩌면 내 지난 시간의 일기장 같은 이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까.      


원고 제안을 받았을 때의 마음을 돌이켜보았다. 호기롭게 첫 책은 꼭 ‘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해놓고 출간 기획서를 쓸 때의 그 마음을, 목차를 잡으며 엄마와의 시간을 하나둘 곱씹어 보던 그 마음을.      


나는 왜 꼭 첫 책을 엄마 이야기로 쓰고 싶었을까.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버팀목이었다. 남편이 없던 엄마와 아빠가 없던 나는 서로가 더없이 애틋했다. 엄마에게 나는 딸이며 친구이자 남편이었고, 나에게 엄마는 엄마이며 친구이자 아빠였다. 우리는 여러 사람에게로 나누어질 마음을 한 데 모아, 서로를 오롯이 사랑했다.      


나의 출발은 엄마였고, 엄마의 출발 역시 나였다.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둥지를 틀어 생을 얻었고, 엄마는 나의 탄생으로 ‘엄마’라는 삶을 얻었다. 엄마는 가끔 내가 버거웠을 것이고, 나는 가끔 엄마가 무거웠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로 했고 함께 살아내는 중이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엄마와 내가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던 순간의 기억들을. 어쩌면 정말로 일기장 같은 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와의 기억은 누구나 일기장 한 편에 남아 있는 기억이지 않을까. 그래서 또 어쩌면, 내 책이 누군가에게는 엄마와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 퇴고를 해야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으니, 지금의 흔들림은 한 권의 책으로 꽃피기 위한 시련이라 받아들여야겠다.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가닿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문장마다 진심을 담아야겠다.           



이 글은 엄마와 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엄마뿐이었지만,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오랜 세월 혼자 두 딸을 키워낸 엄마에게 바치는 딸의 헌사이자, 고단했던 세월을 위로하는 나의 작은 속삭임이다.

내가 엄마 뱃속에 둥지를 튼 그날부터 우리의 사랑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어쩌면 엄마에게 남편이, 내게 아빠가 있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조금 덜 애틋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부터 조금씩 엄마 곁을 떠나고 있었다. 남겨진 엄마는 홀로 나를 품었고, 아홉 달을 견뎌 세상에 내어놓았다. 그리고 당신의 생을 바쳐 나를 사랑했다. 엄마에게 나는 딸이고 남편이며, 친구이고 애인이었다. 나 역시 그런 엄마를, 보통의 딸들보다 더 열렬히 사랑했다. 어찌 보면 특별하지만 들여다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자식을 위해 당신의 삶을 희생하는 엄마는 흔하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은 드무니까. 다만 아빠의 몫까지 짊어져야 했던 나의 엄마는 조금 특별했고, 그런 엄마의 희생이 늘 애잔했던 나는 조금 유난했다.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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