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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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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5. 2021

오랜만에, 출간기

아이가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있던 시기가 하필이면 다음 달에 출간되는 책의 막바지 작업 시기와 딱 겹쳤다. 아이가 많이 아팠다면 출간을 미루었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막바지 작업은 출판사에 모두 인계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아이에게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아이가 잠든 늦은 밤에 작업을 이어할 수 있었다.   


머물던 곳이 원래 교육연수원이었던 덕분에 방에는 꽤 넓은 책상이 있었다. 자는 아이가 깰까 봐, 가져간 미니 스탠드는 켤 생각도 못했다. 노트북 화면의 밝기도 가능한 한 어둡게 해서 ‘도둑’ 작업을 했다. 그렇게라도 내 손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책의 막바지 작업은 ‘1. 책 표지 정하기 2. 책으로 디자인 한 원고를 다시 한번 검토하기, 3. 지은이 소개말 작성하기’였다. 가장 두근거렸던 작업은 책 표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표지는 책의 첫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이다 보니, 시안을 받기 전부터도 어떤 시안이 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다 마음에 들거나, 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했다.)


메일로 받아본 시안은 총 4개였다. 아무래도 ‘엄마’를 소재로 쓴 에세이다 보니 네 개가 모두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했던 느낌과 비슷한 이미지를 품은 디자인도 있었다. 그래도 내 안목을 믿을 수가 없어서 가까운 몇 사람에게 네 개의 표지 시안을 보내고 투표를 부탁했다.

    

나와 같은 표지를 선택한 사람은 우리 엄마 딱 한 사람뿐이었다. (웃픈 상황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표지를 선택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표지에 투표를 해주었다. 말 그대로 ‘대세’였다. 엄마와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보는 눈이 없다며,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책은 내 것이기도 하지만, 출간되는 순간 독자들의 것이기도 하니 여러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참고 안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몰표가 나왔다.)     


다음으로 책의 형태로 디자인한 원고를 검토했다. 그렇게 여러 번 읽으며 수없이 고친 글인데도, 또 어색한 문장이 보이고 반복적인 표현이 보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진아 님, 100% 만족할 수는 없어요. 볼수록 또 새로운 게 보일 거예요. 그래서 마감 기한이 있는 겁니다.”     


대표님 말씀처럼 볼수록 새로운 게 보이는데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최상은 아니어도 최선은 다하고 싶은 욕심에 더는 쥐고 있을 수 없을 때까지 들여다보았다. 결국 마감 기한에 맞춰서 최종 수정본을 보냈다. 아쉬운 표현도 군데군데 남아 있고, 막상 다시 읽어보니 빼고 싶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지만 더는 욕심이고 무리인 것 같아 ‘이제 그만 놓아주자’는 심정으로 발송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으로 지은이 소개말을 쓰는데, 어떤 말로 나를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고등학교 교사? 국어 교사? 두 아이의 엄마? 엄마의 딸?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가 된 삼십 대 후반? …… 나를 수식하는 많은 말들을 떠올렸다. 첫 책의 첫 소개말이어서 그런지 고민이 깊었다.(소개할 만한 약력(?)이 전혀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구구절절하지 않으면서도 책의 내용과 연결되는 소개말을 쓰고 싶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쓴 첫 책의 첫 소개말은 다음과 같다. (아직 출판사의 OK 사인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실제 책에는 전혀 다른 소개말이 들어갈지도 모른다.)          


한부모 가정, 생활보호대상자, 이혼 가정의 자녀.
나를 수식하는 객관적인 단어들은 하나같이 ‘결핍’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내 삶은 이미 ‘완벽’했다.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기회가 온다면 완벽했던 지난날들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드디어 오랜 꿈을 이루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기막힌 행운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쓰고 또 쓰는 작가의 삶을 꿈꾼다.      


소개말을 쓰면서 다짐했다. 적어도 2년에 한 권 정도는 쓰는 '작가'가 되어보자고. 별안간 찾아온 이 행운을 정말로 오래오래 이어가자고.      


이제 출간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나의 글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딸 어쩌면 아들일 당신께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듯, 잊고 살았던 엄마와의  시간을 가만히 그려볼 수 있기를. 엄마의 시간을 궁금해하고 엄마의 안부를 묻는 일에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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