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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20. 2021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요즘 나는 존재조차 어렴풋한 신이라는 존재가 내 생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끼어든다니 굉장히 기분 나쁜 느낌같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생길 때마다 툭,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그 열망으로 나아가는 문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랄까. 때론 당황스럽지만, 대체로 기분 좋은 끼어듦이다. 처음 독서 모임에 발을 들인 것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여러 개의 독서 모임으로 이어진 것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책 쓰기로 이어진 것도 모두 그런 일의 일환이었다.

     

독서 모임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육아의 탈출구가 필요해서였다. 잠깐이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바 같은 건 없었다. 오직, 쉼이 필요하다는 절실함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유난히 독서로 마음이 끌렸고,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일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은 흘러가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라고, 자라는 순간순간의 경이로움은 삶의 치열함 속에 묻히기 일쑤였다. 육아일기를 쓰다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과 글을 통해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린 공간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독서와 연결되어 독서 활동을 글로 올리기 시작했고, 곧 마흔을 앞두고 머릿속에 드문드문 떠오르는 상념들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책 출판 계약까지 하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다. 내 마음으로 살면서도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던 날들 속에서 독서와 글쓰기는 삶의 방향을 조금씩 전환하게 도와주었다. 그 속에서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이 좋아 조금 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애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어찌 보면 신기한 내 삶의 변화가 『연금술사』를 통해 단번에 이해되었다.      




『연금술사』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양치기였던 산티아고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소설에서는 ‘보물’이 진짜 금은보화로 묘사되지만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꿈일지도 모른다. 산티아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시련을 마주하면서도 보물을 찾아 나선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에 충실하게 따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산티아고가 결심을 할 수 있게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조언해준 이들(살렘의 왕이나 낙타몰이꾼, 연금술사)의 도움이 컸다. 산티아고가 여행에서 그들을 만난 것 자체가 하나의 ‘표지’였고, 산티아고는 그들의 목소리를 모른 척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들을 만난 것에 의미를 두었고, 그들의 말에 귀를 열었다. 그렇게 조금씩 보물(자아의 신화)에 가까워졌다.      


산티아고의 여행을 따라가며 지금의 나의 삶과 산티아고의 그것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신의 끼어듦이 바로 ‘표지’였다. 내가 마음을 두고 걸어가는 길목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이 열리는 것은 내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중임을 알고 하늘이 돕는 것이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은 ‘살렘의 왕, 낙타몰이꾼, 연금술사’가 되어 내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주었다. 이 길의 끝에서 산티아고처럼 ‘보물(자아의 신화)’를 찾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내게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소설은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은 뒤, 사막 여행 중에 만났던 ‘파티마’라는 여인에게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이 부분이 내게는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소설의 전개상 산티아고가 자신의 보물(자아의 신화)을 찾는 장면에서 끝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산티아고가 ‘파티마’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끝이 났을까.      


산티아고는 처음 파티마를 만나자마자, 그녀가 바로 자신의 보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산티아고에게 파티마는 생에 처음 만나는, 가장 강렬한 표지였다. 그랬기에 산티아고는 더 이상의 여행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녀와 함께 사막의 오아시스에 남아 현실의 삶을 꾸리는 것이 진정한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일이라고 믿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는 여행을 끝내기를 바란다고 하며 자신은 언제나 사막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산티아고는 끝내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물을 찾아 떠나고, 보물을 찾아내자마자 여행 내내 마음속 한 편에 강렬하게 품고 있던 그녀에게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소설 중반에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62쪽)라는 문장이 나온다. 처음에는 의아했던 소설의 결말이 필사해두었던 이 문장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손에 쥐고 있는 숟가락에 담긴 기름을 지키느라 진짜 아름다운 것을 놓치는 것이 행복이 아니듯,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숟가락에 담긴 기름이 쏟아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또한 행복이 아닌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 내게 소중한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잊지 않으면서 나의 신화를 찾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비밀이었다.      


주변에서 꿈을 이루었지만 허망하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다.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렸지만, 막상 꿈을 이룬 뒤에 돌아보니 주변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활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지만, 돌아보니 그것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는 분들도 많다. 그 가운데 어디쯤을 잘 조율해서 걷는 일은 때론 불가능해 보일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비밀이라면, 또 애써 보는 수밖에.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은 『연금술사』는 전에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분명히 처음 읽는 책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문장을 곱씹어 가며 읽었다. 순수했지만 세상을 몰랐고, 꿈이 많았지만 무엇에도 선뜻 도전할 용기는 없었던 스무 살의 내게는 와 닿지 않았던 수많은 문장이 마음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이래서 좋은 책은 읽고 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보다.     


<마음에 새기고 살고 싶은 문장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47쪽)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표지를 따라가야 한다네. 신께서는 우리 인간들 각자가 따라가야 하는 길을 적어주셨다네. 자네는 신이 적어주신 길을 읽기만 하면 되는 거야.”(58쪽)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아의 신화를 추구하는 사람의 끈기와 용기를 시험하는 시련뿐이라는 것을. 그 때문에 그는 서두를 수도, 초조해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신이 그의 앞길에 준비해놓은 표지들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153쪽)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하다가도 동요하고, 이제는 마가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잠 못 들게 합니다.”
“좋아.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네. 마음이 그대에게 말하려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201쪽)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어. 그런데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 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만 얘기하지. 그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그건 우리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지.’(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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