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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18. 2021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음식과 사랑, 그리고 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소설이다.(아주 에로틱한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한다.) 오죽하면 이 소설에 ‘요리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부여하기도 했을까. 이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이전까지 소외되어 있던 부엌, 음식 등을 통해 여성의 삶을 소설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1월부터 12월까지 각 월과 총 12개의 요리(6월에는 성냥 반죽이라 요리가 아니긴 하다)를 연결시켜 전개된다. 구체적인 재료의 계량 수치와 요리 순서를 묘사하고 있어 요리책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다만, 그 요리를 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티타’라는 한 여성의 절절한 사랑과 삶의 이야기 덕분에 문학적 의미 또한 적지 않은 작품이다.        

  




<줄거리와 이야기 속  음식들>


데 라 가르사 집안의 주인은 마마 엘레나이다. 이 집안에는 헤르트루디스, 로사우라, 티타라는 세 명의 딸이 있다. 막내딸인 티타는 마마 엘레나가 젖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부엌에서 나차(집안의 부엌일을 맡았던 여인)의 음식을 먹으며 자란다. 덕분에 티타는 나차와 각별한 정을 쌓으며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들을 어린 시절부터 손에 익힌다. 이 집안에는 막내딸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 티타는 자신이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 있지만, 페드로라는 남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페드로가 청혼을 하러 오던 날,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운명을 말해주며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권한다. 페드로는 어떻게라도 티타 근처에 머물고 싶은 마음에 그 권유를 받아들인다. 실망과 좌절에 휩싸인 티타는 슬픈 마음을 가득 품은 채로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결혼식 피로연 음식,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만든다. 피로연에서 그 음식을 먹은 모든 사람들은 구토 증상에 휩싸인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날 나차가 죽고, 티타는 정신적 지주를 잃는다.


나차가 죽은 지 일 년째 되던 날, 페드로는 그것을 기회 삼아 티타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고, 티타는 그 꽃으로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만든다. 티타의 기쁨과 설렘, 성적 욕망이 가득 담겨 있는 그 요리를 먹은 뒤, 헤르트루디스는 온몸을 휘감는 성적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간다.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첫 아이인 로베르토를 제 손으로 받은 티타는 젖이 나오지 않는 로사우라 대신에 자신의 젖을 물린다. 티타는 로베르토에게 조카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로베르토의 세례식 날 티타는 엄마의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인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를 만든다. 세례식 중 여전히 뜨거운 티타와 페드로 사이의 눈빛을 눈치챈 마마 엘레나는 페드로와 로사우라, 로베르토를 텍사스로 보내겠다고 선언하고 티타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로베르토가 떠난 후 삶의 의욕을 잃은 티타는 ‘북부식 초리소’를 만들면서도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이다. 그런 티타에게 로베르토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마 엘레나는 별다른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티타는 처음으로 마마 엘레나에게 저항한다. 마마 엘레나는 티타를 정신 병원에 보내겠다며 마을의 의사인 존 브라운 박사를 데려오라고 한다. 존은 티타를 데리고 사라진다.


존은 티타를 정신병원 대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간호한다. (사실 존은 이전에 티타의 집에 왕진을 갔다가 티타에게 첫눈에 반한 상태였다.) 존의 따듯한 간호 속에서 티타는 조금씩 회복되지만 마음을 완전히 열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존은 ‘성냥 반죽’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영혼의 불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티타는 자신의 집안일을 돕던 첸차가 가져온 ‘소꼬리 수프’를 먹고 몸과 마음을 일시에 회복한다. 티타는 존의 마음의 받아들여 약혼을 한다. 마마 엘레나는 농장에 든 도둑들에게 강간당하지 않으려 버티다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된다. 티타는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를 정성껏 보살피려 하지만, 마마는 티타의 저의를 의심하고 티타가 자신을 죽이려 음식에 독을 탄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마 엘레나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소식을 들은 페드로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로사우라가 집으로 돌아온다.


로사우라는 조산으로 딸 에스페란사를 낳는다. 그 과정에서 자궁을 들어내는 바람에 에스페란사는 로사우라의 외동딸이자 막내딸이 된다. 티타는 조카가 자신과 같은 운명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존이 티타에게 청혼을 하러 오기로 한 날, 티타는 준비하던 ‘참판동고’가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한다. 첸차의 도움으로 다행히 음식을 마무리하지만, 당장 집을 떠나고 싶었던 티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은 하나뿐인 숙모를 모시러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결혼은 미루어진다. 존이 떠나고 페드로는 티타를 덮친다.

티타는 페드로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그 사이에 마마 엘레나의 망령이 나타나 티타와 아이를 계속해서 저주한다. 티타는 ‘초콜릿과 주현절 빵’을 만들며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집을 떠난 헤르트루디스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을 빈다. 주현절에 거짓말처럼 헤르트루디스가 돌아온다. 나체로 집을 떠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혁명군 여장교가 되어, 혁명군 장교인 남편과 그 휘하의 부대원까지 거느리고 말이다.


헤르트루디스를 위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크림 튀김’을 만들며 티타는 헤르트루디스에게 페드로의 아이를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백한다. 헤르트루디스는 티타에게 페드로와의 사랑을 되찾으라고 조언하고, 우연히 티타의 고백을 들은 페드로는 뛸 듯이 기뻐한다. 마마 엘레나의 망령은 계속해서 티타를 괴롭히고, 티타는 끝내 어머니를 부정하는 말들을 토해낸다. 그러자 마마 엘레나의 망령은 점점 작아져 하나의 불씨가 되고, 티타에게 나타났던 임신 징후들은 모두 사라지며 생리가 시작된다. 불씨는 집안을 떠돌다 페드로를 공격한다. 페드로는 전신에 화상을 입게 되고, 고통 속에서 티타만을 찾는다. 로사우라는 그 모습을 보고 깊은 좌절에 빠져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티타는 페드로를 정성껏 간호한다. 로사우라는 티타에게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자신의 딸인 에스페란사에게 얼씬거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존은 메리 숙모를 데리고 티타의 집을 찾아오고, 티타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른 채 ‘칠레고추를 곁들인 테스쿠코식 굵은 강낭콩 요리’를 선보인다. 결국 티타는 존에게 자신이 페드로에게 순결을 뺏겼다고 고백하고, 존은 모두 괜찮으니 티타의 선택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결국 티타는 존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집안에 남는다. 티타와 페드로, 로사우라는 역할을 분담하여 에스페란사를 키운다. 티타는 조카가 자신의 운명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사우라를 돌본다. 그러다 에스페란사와 존의 아들 알렉스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 로사우라는 격렬히 분노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맞는다. 티타는 에스페란사와 알렉스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최고의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를 만든다. 그 요리를 먹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집을 떠난 사이, 집안에 남은 페드로와 티타는 처음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깊고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죽음을 맞는다. 두 사람이 일으킨 사랑의 불씨로 온 집안과 농장이 불타고, 겨우 남은 것은 티타의 요리책 한 권이 전부였다.      




티타의 요리에는 티타가 느낀 절절한 사랑, 좌절, 분노, 욕망, 그리움 등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덕분에 그 요리를 먹은 어떤 이들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이기도 하며, 알 수 없는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요리는 인간의 오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몇 안 되는 행위이다. 도마를 울리는 칼질 소리와 절구에 재료를 빻는 소리는 청각을, 요리 과정에서 또 완성된 요리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기는 후각을, 재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성된 요리가 되었을 때 눈에 와 닿는 모습은 시각을, 재료 저마다의 독특한 감각은 촉각을, 요리가 혀끝에 닿을 때에는 미각을, 그렇게 요리는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오감이 총동원 되어야만 하나의 요리를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다. 그런 요리가 특정 추억이나 감정과 결부되면, 그 요리는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 된다.      


티타가 만드는 음식들은 모두 그랬다. 부엌에서 태어나 부엌에서 자란 티타에게 부엌은 삶의 전부였다. 페드로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에도 마마 엘레나의 분노에 몸서리칠 때에도 티타는 부엌에서 자신만의 요리를 하며 견뎠다. 티타의 요리는 그저 배고픔을 해소하는 음식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고, 감당하기 힘든 운명을 이겨내는 자기만의 방법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티타의 삶이 너무나 기구해서 자주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의 내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운명의 굴레를 지워 티타를 핍박하는 마마 엘레나를 이해할 수도, 그 운명을 대물림하려는 로사우라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결국 다시 운명의 굴레 속으로 발을 들이는 티타가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며 티타는 나름의 방식으로 운명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 소설은 페미니즘 논의를 한 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죽은 어머니였지만 끝내 자신의 증오를 고백하고 그로써 어머니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나 적어도 자신의 조카에게만은 그 운명을 대물림하지 않고자 언니와 맞서는 모습은 충분히 시대를 앞선 모습이기도 했다.      




소설의 원제는 ‘Como aguapara chocolate’로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이 소설은 국내에 소개될 때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소개되었고, 그때 영화의 제목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소설이 소개되면서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따랐다고.

    

소설을 읽은 뒤, 소설의 제목은 원제가 훨씬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타의 삶에서 ‘달콤’한 초콜릿을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잠깐씩 페드로와 마음을 나누며 사랑에 설렘을 느끼는 티타를 볼 수 있긴 하나, 그 역시도 ‘달콤’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에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내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그 역시 내게는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로 ‘쌉싸름’했던 티타의 삶을 떠올리며, 내 삶은 어떤 초콜릿 맛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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