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프롤로그 - 직관
Ⅱ. 장 폴 사르트르 - 오프비트 피아노
Ⅲ. 프리드리히 니체 -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피아니스트인지
Ⅳ. 롤랑 바르트 - 피아노가 나를 어루만진다
Ⅴ. 에필로그 - 울림
사르트르에게 피아노 연주는 지적 담론을 피하고, 타자에게 조종당하거나 단절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활동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일한 현재를 산다고 여기지만 우리 각자는 굉장히 다른 시간과 리듬 속에 살고 있다. 피아노 연주는 이 비밀스러운 시간성에 동참한다. (62쪽)
사르트르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일시적 멈춤이었고 불규칙한 심장박동이었으며 독특한 템포였다. (75쪽)
피아노는 니체에게 단순한 ‘악기’ 그 이상이었다. 자신만의 피아노와 포르테를 발견하는 소리의 장소였고, 심각한 지적, 정서적 균열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 났을 때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도왔다. 또한 그는 건반 위에서 마음껏 상상의 세계를 펼쳤다. 대화하고 싶은 상대-철학자보다는 주로 음악가-를 건반 위로 불러내어 가상의 대화를 나눴고, 스스로 그들처럼 역사에 남을 위대한 작곡가가 되는 영광을 꿈꾸었다. 반면 니체의 철학적 글쓰기는 독창성을 증명하고 우월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의지에 지배당했다. ‘니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서양 철학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그의 글은 스스로를 무자비한 비평가, 고독한 예언가로 만들었다. (137쪽)
아마추어리즘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음악학적 선회를 시도한 것은 분명 이제까지의 음악 비평과 다른 점이다. 바르트는 자신의 연주를 분석한 결과,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감정과 시간성을 소리-물질의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에 그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주자는 피아노와 물리적으로 접촉할 뿐 아니라 정식적으로도 교감한다. (중략) 그들은 남들과 다르게 연주할 뿐이다.(146)
바르트에게 피아노 연주는 일종의 속도로 나타난다. 속도는 주체가 지닌 고유한 리듬이고 빠르기며 움직임이다. (중략) 바르트는 모든 개인이 고유 리듬을 실천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세계를 꿈꿨다.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바르트의 경우에는 단연 피아노였다.(213쪽)
피아노를 치는 시간, 이 시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인 크로노스(Kronos)와 다르게 흘러간다. 물리법칙에 종속되어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일상의 시간에서 이탈하여 생경한 시간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 안에서는 음악 안에 살아 있던 감정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사르트르와 니체, 그리고 바르트는 이러한 독특한 시간성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비밀스러운 세계로 들어가려면 열쇠가 필요했고 그것은 다름 아닌 피아노 연주였다. 이들은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아 형이상학적 시간의 세계로 들어갔다. (223쪽, 에필로그 -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