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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04. 2021

『건반 위의 철학자』(프랑수아 누델만)

이 책은 철학 교수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저자가 생전에 피아노 연주를 몹시도 사랑했던 세 철학자에 대해 쓴 책이다. 사르트르와 니체와 바르트, 세 철학자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읽었기에 내게는 좀 힘겨운 책이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고, 아름다운 표현들도 많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의 서술에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도 꽤 있었다. 덕분에 책을 덮는 순간에는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지던 세 철학자가 한 뼘쯤 다가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Ⅰ. 프롤로그 - 직관
Ⅱ. 장 폴 사르트르 - 오프비트 피아노
Ⅲ. 프리드리히 니체 -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피아니스트인지
Ⅳ. 롤랑 바르트 - 피아노가 나를 어루만진다
Ⅴ. 에필로그 - 울림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포함,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르트르와 니체, 바르트는 모두 평생에 걸쳐 피아노 연주를 했던 철학자였다. 공교롭게도 세 철학자 모두 쇼팽을 사랑했으며,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각 부분에서는 철학자의 삶과 피아노 연주가 어떤 식으로 의미를 엮어가는지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각 부분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세 철학자의 피아노 연주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들이 부분 부분 뒤섞여 설명된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사르트르는, 삶의 모습과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에 괴리감이 가장 큰 인물이었다.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레지스탕스로 알려진 사르트르가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쇼팽을 연주하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어머니나 수양딸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사르트르에게 피아노 연주는 지적 담론을 피하고, 타자에게 조종당하거나 단절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활동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일한 현재를 산다고 여기지만 우리 각자는 굉장히 다른 시간과 리듬 속에 살고 있다. 피아노 연주는 이 비밀스러운 시간성에 동참한다. (62쪽)

사르트르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일시적 멈춤이었고 불규칙한 심장박동이었으며 독특한 템포였다. (75쪽)     


치열한 현실 세계를 살던 사르트르에게 피아노 연주는 일종의 휴식이자, 안식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치던 기억으로 평생을 피아노와 함께 했던 사르트르, 바깥에서는 저돌적이고 저항적이기 그지없는 투사였지만,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어머니 앞에 선 소년이 되고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사르트르는 피아노 연주를 하는 동안만큼은 물리적 시간과 다른 시간성을 느끼며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니체는 철학 이상으로 음악에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음악가로 인정받기 위해 꽤 많은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물론 작곡의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못했지만. 건강이 나빠져 저술 활동을 비롯해 일체의 철학적 활동을 하지 못했던, 죽기 전까지의 10년 동안에도 피아노 연주만큼은 쉬지 않았다고 하니, 니체가 지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피아노는 니체에게 단순한 ‘악기’ 그 이상이었다. 자신만의 피아노와 포르테를 발견하는 소리의 장소였고, 심각한 지적, 정서적 균열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 났을 때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도왔다. 또한 그는 건반 위에서 마음껏 상상의 세계를 펼쳤다. 대화하고 싶은 상대-철학자보다는 주로 음악가-를 건반 위로 불러내어 가상의 대화를 나눴고, 스스로 그들처럼 역사에 남을 위대한 작곡가가 되는 영광을 꿈꾸었다. 반면 니체의 철학적 글쓰기는 독창성을 증명하고 우월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의지에 지배당했다. ‘니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서양 철학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그의 글은 스스로를 무자비한 비평가, 고독한 예언가로 만들었다. (137쪽)     



내게는 언어학자로 더 익숙한 롤랑 바르트는 철학자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니체처럼 대단한 작곡가 되고자 한 창작 욕구는 없었으나, '오직 음악만이 기호와 담론의 세계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 주기 때문에 음악을 사랑한다고(210쪽)' 말할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아마추어리즘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음악학적 선회를 시도한 것은 분명 이제까지의 음악 비평과 다른 점이다. 바르트는 자신의 연주를 분석한 결과,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감정과 시간성을 소리-물질의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에 그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주자는 피아노와 물리적으로 접촉할 뿐 아니라 정식적으로도 교감한다. (중략) 그들은 남들과 다르게 연주할 뿐이다.(146)

바르트에게 피아노 연주는 일종의 속도로 나타난다. 속도는 주체가 지닌 고유한 리듬이고 빠르기며 움직임이다. (중략) 바르트는 모든 개인이 고유 리듬을 실천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세계를 꿈꿨다.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바르트의 경우에는 단연 피아노였다.(213쪽)     


바르트가 사랑한 음악가는 쇼팽과 슈만이었지만, 그의 음악적 서술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서술이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음악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아마추어를 연주 실력이 부족해서 ‘프로가 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주 세계를 ‘다름’으로 이해하는 시선이 좋았다. 더불어 개개인이 가진 ‘고유 리듬’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하며,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 리듬을 실천하는 세계를 꿈꾸는 마음도 따듯하게 느껴졌다.      




피아노를 치는 시간, 이 시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인 크로노스(Kronos)와 다르게 흘러간다. 물리법칙에 종속되어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일상의 시간에서 이탈하여 생경한 시간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 안에서는 음악 안에 살아 있던 감정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사르트르와 니체, 그리고 바르트는 이러한 독특한 시간성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비밀스러운 세계로 들어가려면 열쇠가 필요했고 그것은 다름 아닌 피아노 연주였다. 이들은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아 형이상학적 시간의 세계로 들어갔다. (223쪽, 에필로그 - 울림)     


사르트르, 니체, 바르트, 세 철학자에게 피아노는 그런 존재였다. 일상의 시간에서 이탈하여 독특한 시간성을 누리게 하는 것, 바로 그 문을 열어주는 열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열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잠깐 비켜선 시간이 필요하니까. ‘나에게 그런 열쇠는 무엇이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 “당신께는 그런 열쇠가 있으신가요?” 궁금해지는 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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