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의 질문은 뉴기니인과 유럽 백인의 대조적인 생활양식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이 문제를 확대하면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규모가 더 큰 현저한 불균형도 내포하게 된다. 유라시아에서 발원한 여러 민족, 특히 아직도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사는 사람들과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들이 현대 세계의 부와 힘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 아프리카인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은 비록 유럽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부와 힘에서는 여전히 훨씬 뒤처져 있다. 또 다른 민족들, 가령 오스트레일리아,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단 등의 원주민은 자기네 땅을 모조리 빼앗기고 백인 이주민들 손에 살해되거나 예속되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아예 몰살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부와 힘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분포하게 되었을까? 예를 들면 어째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은 유럽과 아시아의 민족들을 죽이고 몰살하지 못했을까?(16쪽 프롤로그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품다’)
유럽인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 수는 두 가지 원인 때문에 크게 감소했다. 첫 번째는 원주민을 사살한 일이다. 유럽인이 뉴기니 고지대로 진출하던 1930년대와 달리 18세기 말이나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인은 그 같은 만행을 크게 꺼리지 않았다. 최후의 대규모 학살은 1928년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원주민 31명을 죽인 일이었다.
두 번째 원인은 유럽인이 들여온 병원균에 있었다. 원주민은 이 같은 병원균에 대해 면역성을 얻거나 유전적 저항력을 진화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1788년 유럽인 정착민이 시드니에 도착한 후 채 1년도 지나기 전에 유행병으로 죽은 원주민 시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원주민을 죽인 질병은 천연두, 인플루엔자, 홍역,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수두, 백일해. 결핵 매독 등이었다. (472쪽,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이 낙후된 원인)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생물지리학적 우연(특히 두 대륙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579쪽, 아프리카는 왜 흑인 천지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