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희생된 순수한 소년의 비극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짓밟는 제도와 교육에 대한 비판
3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선생들과 마을 목사, 아버지, 특히 교장 선생까지도 격려의 채찍질로 한스를 숨 가쁘게 몰아세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우등생이었다. 맨 앞에 우뚝 서있는 한스는 아무도 자기 곁에 다가서지 못하게 발버둥 쳤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했다.(64쪽)
친구의 눈에는 모든 것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 한스를 놀라게 만들었다. 하일너에게 추상적인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거나 환상의 색깔로 그릴 수 없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냥 내팽개쳐 버렸다. 그에게 수학은 음흉한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았다. (116쪽)
하일너와의 우정이 깊어지고, 즐거워져 갈수록 학교는 한스에게 점점 더 낯설게만 여겨졌다. 새로운 행복감이 싱싱한 포도주처럼 용솟음치며 한스의 피와 사상을 꿰뚫고 퍼져나갔다. 이에 비하면, 리비우스나 호머는 빛바랜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중략)
선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청년의 발효가 시작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기에 조숙한 소년의 기질에서 나타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애당초 선생들에게는 하일너의 남다른 천재적 기질이 어쩐지 섬뜩하기만 했다.(141쪽~142쪽)
「저기 걸어가는 신사 양만들 말입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도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이지요.」(중략)
「진정하세요, 기벤라트 씨. 전 그저 학교 선생들을 말한 것뿐이에요.」
「어째서요? 도대체 왜 그렇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 저 아이에게 소홀했던 점이 적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