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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08. 2021

『6도의 멸종』(마크 라이너스)

‘자, 그러면 다 함께 지옥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들어가기 전에’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은 스릴러나 공포물이 아니다. 지극히 객관적인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쓰인, 과학·환경 분야의 베스트셀러이다. 들어가기 전부터도 섬뜩했던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까지 오랫동안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아이는 이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의 기대수명을 채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지구의 ‘기온 상승’, 즉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구의 온도가 1도에서 6도까지,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지구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각 장의 이름이 곧 ‘1℃ 상승’, ‘2℃ 상승’,…… ‘6℃ 상승’으로, 장을 시작하는 부분에 미리 간단한 내용 요약이 제시되어 있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본문은 이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1℃ 상승

미국 서부에서는 장기간 지속된 가뭄으로 기름진 땅 아래 모래층이 드러난다. 농부들은 농토와 거주지를 잃고 식료품 가격은 폭등한다. 반면 미국 남부와 동부는 계절풍 몬순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늘어난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빙이 사라지고, 산 아랫사람들을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세계 각지의 희귀 식물들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서서히 멸종되어 간다.      


2℃ 상승

중국 북부와 남부에 각각 대홍수와 대가뭄이 닥친다. 가장 큰 생물서식지인 바다의 환경도 나빠진다. 아산화탄소의 절반이 바다에 흡수되면서 석회질로 된 생물들이 죽어간다. 서늘하던 중위도권 지역마저 혹독한 열파에 시달리고, 산과 들은 자연발화성 화재에 타들어간다. 그린란드 빙하가 해빙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바다에 면한 도시들이 가라앉는다.      


3℃ 상승

양의 되먹임 현상으로 온난화는 나름의 추진력을 얻는다. 아마존 우림지대가 거의 붕괴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이탄층이 마르면서 불에 탄다. 태평양 일대에서는 강력한 슈퍼 엘니뇨가 항구적으로 발생하고, 해안지대에는 허리케인까지 닥치면서 식량생산에 큰 차질이 생긴다. 아열대 지역의 주민들이 기근으로 ‘민족 대이동’을 시작한다.      


4℃ 상승

남극의 빙하가 완전히 붕괴된다. 이로써 이미 침수되고 있는 해안 지역이 완전한 파멸을 선고받는다. 한국은 강수량의 4분의 1 정도가 늘겠지만, 내륙지역은 기온 상승으로 땅이 건조해진다. 지중해 지역 모든 나라들이 폭염과 가뭄에 몸살을 앓는다. 영국도 여름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상승한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눈 구경이 힘들어진다.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그리고 그린란드 남부의 영구동토층이 녹고, 메탄이 대량 발생한다.


5℃ 상승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모두 사라진다. 정글도 불타 없어진다. 인류가 가뭄과 홍수라는 재난에 쫓기면서 자본시장도 붕괴된다. 거주 가능지역에 속한 러시아나 캐나다 등에는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갈등이 생기고, 결국 핵무기까지 동원된 전쟁이 시작된다. 바다에서는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분출되어 온난화를 증폭시키고, 쓰나미가 발생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다.     


6℃ 상승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대량으로 분출되면서 다수의 생물종들이 전멸한다. 죽은 생물들의 시체가 썩으면서 유독한 황화수소가 발생하고, 이는 오존층을 파괴하여 자외선의 양을 크게 증가시킨다. 땅굴 속으로 피해 겨우 살아남은 동물들마저 굶어 죽는다. 바야흐로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에 있다.           




서서히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의 단계로 가고 있다. 먼 과거에 공룡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어쩌면 인류를 포함한 현재 지구의 모든 생명체도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 기온의 상승으로 인해서 말이다.

 

사실 이미 1도~2도의 상승은 현실화되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곰들이 살 곳을 잃었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가뭄과 홍수가 세계 곳곳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허리케인이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것 또한 낯선 일이 아니다. 투발루의 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지도 벌써 꽤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 기온 현상으로 목숨을 잃는 동물과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북극이나 투발루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을 읽던 4월의 어느 날, 정확히는 4월 20일, 내가 사는 대구의 최고기온은 30℃였다. 30℃라니? 눈을 의심하며 날씨 어플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 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20년 전만 해도 30℃라는 기온은 7월은 되어야 볼 수 있는 기온이었다. 4월은 봄 중의 봄! 가장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야 하는 때인데, 불과 20년 만에 반팔 옷을 입고도 땀을 흘려야 하는 때가 되었다니. 높은 기온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봄의 일교차는 전에 없이 심해졌고, 바람은 도무지 봄바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이 책을 읽다 보니, 정말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웠다.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더 빠른 속도로 5~6도 상승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론 수많은 과학자들이 기술의 개발로 어떻게든 그 속도를 늦추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미 시작된 상승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고...



      

저자는 마지막에 ‘우리가 선택할 미래’라는 장을 더해, 온난화로 인한 지구 생명체의 멸종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공포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지던 이 책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저자의 문장이 나의 양심 깊숙한 곳을 콕콕 찌르며, 재촉하고 있었다.      


‘변명은 필요 없어. 이제 무엇이라도 해야 할 때라고!’     


우리가 온난화에 냉담했던 원인을 에너지 자원 문제에 한정 지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는 나중으로 연기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크게 반응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우리는 임박한 싸움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 미래의 도전에 대해서는 잘 대처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온난화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취해온 반응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부인(denial)’일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흡연자가 자기는 일찍 죽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려 하거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들이 산에서 얼어붙은 시신을 지나가면서도 자기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와도 같다. (중략)

이 연구에서는 부인을 하는 다른 방식들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유형별로 보면 책임 전가를 위한 자기 암시(나는 재활용 같은 다른 방식으로 환경을 보호하지), 책임의 부인(나는 이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댁에게는 나에게 뭐라 할 자격이 없어), 비난의 거부(난 잘못이 없는데), 무지(내 행동의 결과가 뭔지 난 몰라), 무기력함(내가 뭘 해도 달라질 게 있나), 위안(내 행동을 바꾸기는 너무 어려워), 날조된 제약(장애물이 너무 많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들은 다른 사람들과 기후변화에 대해 의논해본 사람에게는 꽤 친숙할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반대 의견을 수백 번은 들어본 것 같다.(310쪽~313쪽, 우리가 선택할 미래)          


이 페이지를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는지 모른다. 읽는 내내 부끄럽고, 따가웠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서술된 여러 가지 방식을 총동원해서 ‘부인’해오던 나였다.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부인’하고 싶다. 난 잘못이 없다고, 내가 뭘 해도 달라질 건 없다고, 다른 방식(재활용)으로 환경을 나름대로 보호하고 있다고!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나 또한 책임이 없지 않으며, 결국엔 이 지구는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단 하나뿐인 별이니까.


각자가 지구온난화라는 게임의 졸이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다. 완전히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졸들을 움직이는 집단적인 손은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314쪽)     




이 책은 독서모임의 선정도서였는데, 모임 주최자님의 제안으로 관련 내용을 다룬 유튜브 영상 하나를 함께 보았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온난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영상이었다.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나 재활용 열심히 하기 등은, 중요하지 않은 일은 아니나 온난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비한 일이라고 한다. 오히려 ‘고기’를 덜 먹는 것이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온난화 관련된 제재를 법제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 시민으로서 제대로 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거나, 목소리 내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논문을 요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책이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온난화의 위험과 우리의 책임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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