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죽음은 실존적으로 반드시 부딪쳐야 되는 사건이며 우리 주변에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고,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며 영생이라는 말에 오히려 끌려왔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현재 우리의 삶을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2045년, ‘죽지 않는 시대가 온다’ 중)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재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지금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중략)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장례식장에서 탱고를’ 중)
『관촌수필』이라는 좋은 작품을 한국 문학사에 남긴 소설가 이문구 선생을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이문구 작가는 2003년 2월에 위암 말기 통보를 받고는 곧바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빚지고 안 갚은 것이 있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3년 전 계약하고 인세까지 미리 받았던 동시집 원고를 서둘러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큰 아들에게 신신당부한다.
'내가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 손잡고 산소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장하지 마라. 화장 후에는 보령 관촌에 뿌려라. 문학상 같은 것 만들지 말고 제사 대신 가족끼리 식사나 해라. 나는 이 세상 여한 없이 살다 간다.' ('장례식장에서 탱고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