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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20. 2021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인디고 서원 엮음)

인디고 서원은 2004년 문을 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다. 책의 부제는 ‘코로나 시대, 새로운 교육을 위하여’이며, 코로나로 인해 급변하는 교육 현실 속에서, 제대로 된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력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이나, 행복 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청소년 자살률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는 교육, 그중에서도 ‘학벌’과 관련된 것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동의할 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이 나라의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다. 아니,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현실에서 괴리된 주장이라며 속내를 의심받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확실히 병들었다. 치료가 필요한데, 모두가 손을 놓고 있다. 이 순간, 병든 교육 현장 속에서 시들어가는 것은, 오직 아이들이다.      


그게 너무 아프다.      




현장에 있었을 때 나름대로 협력학습에, 모둠학습에, 질문이 있는 수업을 구성하려고 노력했었다. 내가 가르치고, 너희가 배우는 수업이 아니길 바랐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서로’ 배우는 수업이길 바랐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국어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매 시간 새로운 활동지를 만들어갔고, 아이들과 질문하고 답하며, 토론하고 토의하며, 때론 함께 울고 웃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아이들이 내 수업을 들으며 불안해했다. 답을 알려달라고 했고, 내가 말하는 모든 문장을 받아쓰려고 했다. 내 말이 정답이 아니라고, 이것도 내 생각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아이들은 듣지 않았다. 오직 내 입에서 흘러나간 말이어야 안심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출제자였고, 아이들은 그 시험의 대상자였다.      


모든 것은 입시로 귀결되었다.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공부했다. 특정하게 선망하는 과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아이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무작정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만 있었다. 대학에 가려면 성적이 필요했고 그러니까 공부했다.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더 이상 공부가 하고 싶지 않은데 왜 억지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꾸만 이탈했다. 그런 아이들은 쉽게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그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마다 자주 말문이 막혔다.      


! 대체 공부는 왜 해야 해요?”

“쌤! 이거 배워서 뭐해요? 저는 대학 안 갈 건데요?”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공부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고, 성적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말해봐도 소용없었다. 사실 나도 내 말에 자신이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 역시도 시험을 의식했고, 수능에 매달려 있었다.     

 

현장에 있던 그때나, 조금 벗어나 밖에 있는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다.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진지하게 묻는 아이들에게 어떤 답을 해주어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답을 주었다.    

  



이 책은 ‘1장 공부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2장 공부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3장 공부는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이다’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그 장의 내용을 대표하는 질문(예를 들어 ‘어떤 양심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전염병의 시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등)이 등장하고, 그에 대한 답이 청소년의 목소리로 실려 있다. 청소년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과 그 책에서 찾을 수 있는 토론거리, 함께 볼만한 영화까지 소개되어 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많은 책과 영화를 함께 본 느낌이다.   

  

각 장의 제목처럼 공부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므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므로’,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이므로’ 반드시 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공부의 결론이 그쪽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교육이 입시와 대학을 향해 있는 이상, 제대로 된 공부, 정당성 있는 공부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아서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선언할 수는 없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나 스스로를 명쾌하게 납득시킬 이유를 찾고 싶다.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말해줄 수 있는, 명확하고도 선명한 이유를.     




학교로 돌아가면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다. 생의 의지가 가득한, 살아있는 눈빛을 지닌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함께 배우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질문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게 해 주리라 믿으면서. 그로써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한국 사회의 교육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고, 장 외워야 하고, 정답을 맞혀야 하고, 체계에 적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니 다른 문제는 모른 채, 이미 잘 닦여진 길에 ‘나’라는 존재를 잘 끼워 맞춰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살면 잘 사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15쪽, 프롤로그)          

교육은 청소년을 기존 사회의 가치 체계에 맞게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자신에게 잠재된 자유와 가능성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동등한 존재자이자, 자기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하게 하는 삶의 원리입니다. (25쪽)     

인간다운 삶을 가르치는 교육, 자유롭고 정의로운 교육으로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혁명입니다. 타인과 함께 협력하는 법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정의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가온 이 변혁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어려운 시대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30쪽)     

공부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혹은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제대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인간의 선함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는 정의로운 정체성을 기르는 일입니다. 이 자명한 사실을 이제 더 이상 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37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며, 내 안의 잠재성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고자 하는 낙관적인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은 바뀌어야 합니다. 즉 공부란 내 삶의 혁명이자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혁명입니다.(204쪽)     

배움을 통해 나 자신이 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나아가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할 때, 공부는 혁명이 될 수 있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이 세상의 불의에 의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할 때, 세상은 보다 정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294쪽,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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