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인정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by 진아

우리 집 두 아이는 참 다르다. 외모는 꽤 닮아서 데리고 나가면 누구나 남매임을 알아보지만, 딱 그뿐이다. 성격부터 취향까지 속속들이 살펴보면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첫째 사랑이는 가진 장난감의 90%가 ‘분홍’ 색이다. 둘째 봄이는 ‘파랑’ 또는 ‘초록’ 색이다. 둘 다 같은 장난감을 사러 가도 손에 드는 색깔은 언제나 그렇게 다르다. 첫째는 모든 놀이를 상호작용으로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면 블록 만들기를 하더라도, 만들어서 엄마 혹은 아빠 아니면 동생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역할 놀이를 해야 한다. 즉 블록 만들기의 목적이 블록 조립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와 달리 둘째는 블록 만들기 자체를 즐긴다. 여러 각도로 붙이고 꽂고, 다시 부수거나 빼서 다른 모양으로 만들기를 반복한다. 첫째는 늘 하던 놀이를 또 하는 게 제일 재밌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둘째는 새로운 놀이에 대한 도전 정신이 강하다. 첫째는 한 번 정한 규칙이나 약속을 틀 삼아 안전거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둘째는 규칙과 약속을 이해하지만 그 안에서 요리조리 구멍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그렇다 보니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은 대체로 둘째다.


그뿐이겠는가. 좋아하는 음식도 천차만별이라 덕분에 매일 두 아이의 식단을 다르게 제공해야 한다. 첫째는 편식이 심해서 먹는 것만 먹는다. 둘째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지만 그때그때 제가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고집이 세다는 것이 공통점이겠다.)


이렇게 다른 두 아이가 어떻게 한 배에서, 그것도 내 배에서 나왔는지 나조차 가끔 놀랍다. 내 배에서 키워 세상에 내어놓았는데도, 나는 가끔 내 아이들이 낯설다.




다섯 살이 된 첫째는 한 번씩 지나가는 말로, 하지만 진지하게 묻곤 한다.


“엄마, 봄이는 왜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아?”

“엄마, 봄이는 왜 블록을 멋지게 만들어?”

나나 남편이나, 두 아이를 비교하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런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러지 않는데, 첫째는 유난히 동생을 의식하는 말을 많이 한다. 어찌 되었건 혼자 누리던 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대상(동생)이 생긴 것은 첫째일 테니, 이해도 된다. 그래서 때마다 아이의 말을 가볍게 들어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맞아. 봄이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지. 왜? 사랑이는 그게 부러워?”

“아니, 그냥.”(이미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에서 아닌 게 아닐 것이다.)

“사람은 각자 가진 능력이 달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지. 우리 사랑이는 어떤 걸 잘할까?”

“나는 점프 잘해. 달리기도 잘하고, 공룡 이름도 다 알아.”

“맞아, 엄마랑 전에도 이야기했었지? 우리 사랑이도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까, 잘하는 것도 아직 조금 부족한 것도 다 다른 거야.”

“응! …… 근데 엄마, 나 그때 탐험하는 거 네 살 때는 못했잖아. 이제는 다섯 살 되어서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진짜? 그럼 한 번 도전해봐야겠네. 그런데 못해도 괜찮아.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거니까.”

“응, 우리 탐험하는 데 또 가 보자.”

“그래, 좋아.”



‘탐험하는 데’라는 곳은 우리 동네에 있는 키즈카페를 일컫는 말이다. 그곳에는 내 키 만한 높이에 외나무다리와 흔들 다리 등이 이어져 있는 놀이시설이 있다. 안전장비를 하고 가는 곳이라 어린아이들도 곧잘 하는데, 작년에 네 살이었던 첫째는 무섭다며 발도 제대로 떼지 못한 채 내려왔었다. 그런데 겨우 두 살이던 둘째는 거침없이 끝까지 갔다. 그게 첫째에게는 아주 강력한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너무도 다른 두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될 것이다. 좋은 자극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지금은 남매끼리의 이야기이겠지만, 자랄수록 또래 관계로 그 대상은 확대될 것이다. 그러니 엄마인 나부터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아이들을 틀에 가두지 않고, 각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엄마가 되려면 늘 의식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두 아이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너와 나를 비교하며 갖지 못한 것을 탐하고, 가진 것을 으스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네가 잘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 네게 부족한 것과 내게 부족한 것을 잘 이해하여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각자의 개별성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해 더욱 충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각 개인이 이처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 역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137쪽)


'평등은 본질적으로 쇠퇴에 속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간격, 유형의 다수성,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 내가 거리 두기의 파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강한 시대의 특징이다.'
- 『우상의 황혼』, 프리드리히 니체

자기 자신이 되려면 끊임없이 타인과 차별화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되지 않아요. 거리가 없으면, 똑같아지면 자신이 안 돼요. 현대사회는 자꾸 우리의 차이를 제거하고, 우리에게 똑같아지라고 요구합니다. 판에 박은 듯 인재를 찍어내요. 이런 상황이지만 차이를 가지고 있어야 존중받고 인정받는 인재가 됩니다.(『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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