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보이는 것들

교육매거진 《mom대로키워라》 2021년 5호 기고글

by 진아
* 《mom대로키워라》라는, 재능교육이 발행하는 교육 매거진(웹진&페이퍼진(월간/25,000부))으로부터 원고 의뢰를 받았습니다. 《mom대로키워라》는 바람직한 자녀 교육을 위해 고민하는 부모에게 교육 철학과 고민에 대한 길잡이 정보를 안내하는 매거진입니다.
제가 의뢰받은 2021년 05호 한 권의 테마는 “자신감―평범함도 위대하게 만든다”였어요. 5월 28일 자로 웹진은 발행된 상태고 곧 페이퍼진도 발간된다고 하네요.^^
웹진 주소 : http://www.momkey.com


<자신 없다는 너의 말>


“엄마, 자동차 그려줘!”

“자동차? 사랑이가 한 번 그려 보는 건 어때?”

“아니야! 엄마가 그려줘! 내가 그리면 이상해. 잘 못 그린단 말이야.”

“자꾸 그려 봐야 잘 그리게 되는 거지. 처음부터 잘 그리는 사람이 어딨어.”

“아니야, 아니야, 자신 없어. 그냥 엄마가 그려줘.”


부쩍 그림 그리기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는 눈만 뜨면 자동차를 그려 달라, 도형을 그려 달라, 공룡을 그려 달라, 쉴 새 없이 주문을 해댔다. 어설프더라도 제가 그려보려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엄마인 내 마음일 뿐, 아이는 여전히 ‘자신 없다’라고 말했다.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는 일>

아이는 ‘자신 없어, 못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특히 미술 활동이나 수(數) 활동 등, 평소에 제가 별로 관심 없는 영역은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내 아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자신 없다’라는 말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도 자신감이 높은 편에 속했다. 결과적으로 무엇이든 잘 해내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러 일에 자신 있게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지는 않았다. 오죽했으면 내 별명 중에 ‘하고 잡이’라는 게 있을 정도였다. 하고 싶은 일도 하는 일도 많다며, 어떤 선생님께서 붙여주신 별명이었다. 그랬기에 내 아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자신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아들인데, 자신이 없다니? 해보지도 않고?’

그런 생각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언젠가부터 아이를 양육하는 내 태도를 자꾸만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했다. ‘칭찬을 덜 했나, 칭찬의 방식이 틀렸나, 아이의 자신감을 꺾는 말을 하지는 않았나, 적절한 도전 과제를 주지 못했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조금씩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자꾸 잘하는 일만 하려고 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과하다 싶을 만큼, 자신감을 잃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전에 맞닥뜨리며 살아야 할지 이미 아는 나로서는, 내 아이의 주저함이 이른 ‘포기’가 될까 봐 애가 탔다. 그럴 때마다 “엄마랑 같이 해보자”, “엄마가 도와줄까?”라며 아이를 독려했지만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엄마인 ‘나’의 자신감 회복이 먼저였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감을 잃을 것 같았다. 제일 처음 한 일은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것이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한 한 나누지 않았다. 특히나 ‘요즘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어느 정도로 하는지’와 같은 이야기에는 아예 관심을 끊어버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요즘 아이들이 아니라, 오직 내 아이였다. 만약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듣는다면, 분명 나의 조급함은 비교의 씨앗이 될 터였다. 그 대신 내 아이를 더 많이 관찰했다.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며 내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내 아이가 꺼리고 망설이는 일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걱정하고 애타는 대신에,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엄마인 나부터 그대로 인정하고자 노력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내 시간을 찾고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었다. 몇 년 동안 아이를 키우는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마치 아이와 내가 동일인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성취가 곧 나의 성취처럼, 아이의 실패가 곧 나의 실패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 마음이 더욱 깊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기 전에, 나 자신의 자신감 회복이 먼저였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면 책장을 넘겼다. 아이를 키우며 책을 읽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내 마음을 붙잡아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읽는 일만으로 만족스럽지 않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기부터 시작한 글은 어느새 서평으로, 시로, 육아 에세이로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휴직 후 육아에만 매진하던 나는,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찾아내고,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서 해야 할 일을 만들어가며 아이와 조금씩 분리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고, 나와 다른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하자 마법 같은 일이 생겼다. 아이의 ‘더딤’에 전만큼 애가 타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아이는 내 기준에서 ‘더딘 것’ 일뿐, 제 속도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너는 준비운동 중이었구나>

돌이켜 보면 언젠가부터 아이는, 하나둘씩 무언가를 해내기 시작했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뒤로 숨기 바쁘던 아이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저씨에게 제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어설프지만 스케치북에 이런저런 도형을 그려 들고 오기도 했다. 한 칸도 올라서지 않던 꽤 높은 놀이 시설에, 두세 칸쯤 혼자 올라섰다 내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 내가 인사했어! 네모를 그렸어! 혼자서 이만큼 올라갔어!”라며 뿌듯해했다. 그럴 때면 분명, 나도 아이와 함께 기뻐했다.


내가 조급하고 불안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사소하고 작은 성공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 대단한 성공을 했을 때에만 아이의 자신감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저 나름대로 조금씩 자신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내게는 자신감 없이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던 아이의 행동이, 아이에게는 제 마음을 다잡는 준비운동이었던 것이다.




<너의 ‘자신감’이 뿌리 단단한 큰 나무로 자라나기를>

아이는 여전히 새로운 일에 선뜻 도전하지 않는다. 지금은 준비운동 중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자,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아이의 시간을 믿고 기다리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매일이 시험대에 서는 것 같더라도, 엄마니까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끝내 아이 손에 펜을 쥐어 주며 “자동차는 네가 그려 봐.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본들, 스스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끝내 아이는 펜을 내려놓을 게 분명했다. 그럴 바에야는 아이와 마주 앉아 자동차를 그려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이의 자신 없다는 말은, 어쩌면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니 기다려달라’는 말일지도 모르니.


“사랑아, 오늘은 엄마가 한 번 그려볼게. 사실 엄마도 그림 정말 못 그리지만 그래도 한 번 노력해볼게!”

일부러 ‘노력’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애쓰고 노력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며 얻는 거니까. 아이는 내가 선을 긋고 이으며 자동차를 그리는 과정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나의 모습을 그대로 흡수하려는 듯이.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열 개도 넘는 자동차를 그렸다. 그 시간 동안 나도, 아이도 무척 행복했다.


언젠가는 아이가 어설프게라도 제 손으로 그린 자동차 그림을 들고 나타나리라 믿는다. 그때까지 나는 아이의 시간을 기다리며,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내 마음을 잘 잡아 나갈 것이다. 아이의 자신감을 다그치지 않고, 엄마인 나부터 자신감 있는 삶을 그려나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이의 마음에도 자신감이 뿌리를 내려, 큰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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