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이 말고, 책 읽는 엄마

by 진아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지역 육아지원센터 건물의 1층에 있다. 덕분에 2층의 놀이시설(소규모 키즈카페 정도)과 3층의 장난감 도서관(장난감과 책 대여가 가능함)을 이용하기에 매우 좋다. 특히나 요 며칠처럼 하원 시간에 날씨가 흐려지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일찍 집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2층, 3층을 번갈아 예약해 놀다가 오기 딱이다.


최근에는 2층 놀이시설보다 3층 장난감 도서관을 더 자주 이용한다. 아이들이 3층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가자고 하는 날이 많아서이다. 집에도 책이 적지 않은데 최근에 새로 구매한 책이 없어서 그런지, 첫째는 “새 책! 새 책!” 노래를 부르며 매일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




오늘도 하원 하자마자 책 읽으러 가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3층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서가로 향하더니 각자가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골라 탁자에 놓았다. 양쪽에 아이들을 하나씩 끼고 앉아, 나름대로는 성우 뺨치는 실력을 발휘하며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등장인물이 4명 이상이면 좀 힘들다. 성인 남자, 성인 여자, 아이, 딱 셋까지가 적당하다! 그리고 이 도서관은 미취학 아동을 위한 곳이라, 열람실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일이 가능하다.)


슬슬 목이 아파 왔다.(어이없지만 지금 나는 성대결절 상태이다.)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한 권을 다 읽자마자 다음 책을, 또 다음 책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목을 가다듬고 다시 구연동화를 하고 있는데, 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과 아이 엄마가 손을 잡고 도서관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둘은 옆 테이블에 앉더니 이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엄마의 실력은, 대단했다. 전문 구연동화 선생님 뺨칠 정도였다. 한 사람의 목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소리가 나올 수 있다니!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내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두 아이를 보며 목을 가다듬었다.


“책 재미없어!!”


평화로운 구연동화의 현장을 깬 것은 옆 테이블 아이였다. 아이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 주변의 기둥 뒤로 숨었다,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하며 이곳에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려 했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다 들렸다.)


“여기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많은데? 네가 읽고 싶은 걸로 골라와 봐. 엄마가 재미있게 읽어줄게.”

“싫어. 재미없어. 재미있는 거 없어.”

“여기 옥토넛 책도 있네. 엄마가 옥토넛 탐험대 읽어줄게!”

“아니야, 아니야.”


아이와 엄마는 얼마간 아웅다웅했다. 어떻게든 책을 읽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계속해서 부딪히며 마찰음을 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그쪽이 신경 쓰이는지 자꾸 그쪽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시선을 읽고 있던 동화책으로 돌려, 다시 읽어주려는데.


“맨날 그렇게 놀기만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 책도 좀 읽어야지!”


실망감, 서운함, 답답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사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세 살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엄마가 어떤 마음에서 순간적으로 그런 말을 뱉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 바로 옆 테이블에서 두 아이와 신나게 책을 읽고 있는 게 어쩐지 미안해졌다. 민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두 아이를 설득해 책 두 권을 대여해서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아이의 말로 미루어보았을 때, 아이는 집에서도 독서 경험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말로 미루어보았을 때, 엄마는 여러모로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으리라. 아마도 그 아이 엄마는 도서관 열람실을 예약하며(코로나 때문에 열람실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상상한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책이 있고, 혹시라도 근처 테이블에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책 읽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상상한 그림이 너무도 빨리 산산조각 나자 속상한 마음에 세 살짜리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안타까웠다.


어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아이가 책을 싫어했으면 좋겠다는 엄마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엄마들은 많고도 많았다. 내가 국어교사임을 아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랑 봄이는 엄마가 국어 선생님이라서 책 좋아하겠어요!”


그때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았다. 엄마의 직업이 국어 선생님인 것과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것에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다만 우리 집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편인 이유는, 내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책이 좋으니 아이들에게도 책을 많이 읽어주게 되고, 식탁 한 편에 내 책이 가득 쌓여 있다 보니 아이들도 저희 책에 욕심을 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뭐, 물론 이것도 짐작일 뿐이지만.


가끔 아주 안타까운 경우를 만나는데, 엄마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데 아이들은 책에 영 흥미가 없는 경우이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 속이 얼마나 뒤집어질지 짐작이 간다. 고백하자면, 내가 딱 그랬다.(엄마, 미안해요.)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집에서 엄마 직장까지 꽤 멀었던 터라, 긴 출퇴근 시간에 엄마는 늘 책을 읽었다. 엄마의 가방 속에는 언제나 책이 들어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사람 살기도 비좁던 집안 곳곳에는 책이 쌓여 있었다. 그걸 고스란히 보고 자라면서도, 나는 책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 TOP 5를 뽑아본다면, 그중 하나는 필히 “책 좀 읽어라!”였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주 안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국어교사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에 바빴고, 책을 읽을 틈은 찾기 어려웠다.

엄마에게서 받은 DNA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책에 눈을 떴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서른여덟이 된 지금, 이제는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그리 부끄럽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읽지 못한 책들이 아쉽고, 한 번 읽은 책들을 다시 읽지 못해 안타깝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


놀다말고 책보는 중. 자주보는 책은 내용을 외워서 저희들끼리 읽는다. 이쁘다, 참말.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나의 두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가 계속해서 책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에게 "책 좀 읽어"라고 잔소리할 일은 없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엄마 밑에서 자랐어도 책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꼭 그때의 나처럼, 책과 거리두기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다짐한다.

아이를 다그치지 말고, 엄마인 나부터 책 읽기를 멈추지 말자고.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읽고 쓰는 삶을 살자고.

그렇게 말 대신 삶으로 보여주자고.



아주 먼 훗날, 성인이 된 아이들과 함께 북카페에 앉아 책 이야기를 나눌 꿈을 꾼다.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안되면 혼자 가서 읽으면 되니 조용해서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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