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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6. 2021

『나는 아름다워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이자경)

올해 1월 독서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은 출판사 대표님에게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나와 함께 출간 제안을 받은 분이 있었다. 그 분과 나는 작년에 이 출판사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사이였다. 그 후로 우리는 블로그 이웃을 맺어, 지극히 사적인 생활의 단면까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게 되면서 가까워졌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매일 올리던 일기를 공유하며 이미 굉장한 유대감을 쌓은 터였다.      


책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초고 쓰기와 퇴고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용기를 얻었다. 덕분에 오래 고민도 하지 않고 덥석, 대표님과 출간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를 쓰는 날, 출판사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얼굴은 처음이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했고, ‘글벗’이라는 생각에 어딘지 모를 친밀감도 느꼈다.      


함께 출간을 준비하던 그분의 책이, 먼저 세상에 나왔다.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던 때부터 목차를 잡고 한 편씩 글을 써내려 가던 때, 지난했던 퇴고의 과정을 거쳐 표지 디자인을 고르고 인쇄에 들어가던 때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본 책이다 보니 내가 쓴 것도 아닌데 마치 내 책처럼 애틋하다. 그 마음으로 예약 판매 시작일에 내 돈 주고 구입해서 열흘 가까이 오매불망 기다렸다. 저자의 삶과 진심이 가득 담겨있는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하고 기쁘다.  

             



저자에게는 수식어가 많다. 네 아이의 엄마, 홈스쿨링 하는 엄마,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 플로깅 활동가, 시골살이 등. 어찌 보면 다 다른 맥락처럼 느껴지지만, 책을 읽어보면 결국 모두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들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삶.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간극이 생기게 마련인데, 저자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알고 느낀 것을 그대로 삶으로 옮겨왔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고, 아이와 놀이처럼 시작한 쓰레기 줍기가 플로깅으로 이어졌으며, 쓰레기를 줍다 보니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돌아보게 되면서 미니멀 라이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되었다. 사실 플로깅, 미니멀 라이프, 제로 웨이스트, 모두 요즘 환경 분야에서 매우 주목받는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관련 책들도 쏟아지듯 발간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플로깅이랑 스웨덴어의 줍다(plocka upp)와 영어의 달리기(jogging)를 합성한 말로 걷거나 뛰면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플로깅을 우리나라에서는 ‘줍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쓰레기 줍기’와 가볍게 달리는 ‘조깅’을 합한 우리말이다.)     


이 책의 차별점은 그 일들의 실천 방법을 소개하거나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플로깅이라는 말조차 없던 때에, 아이와 놀이처럼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면서 삶의 변화를 이끌어간 내용이다. 저자의 변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네 아이는 이미 플로깅 전문가들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의 별칭이 ‘지구를 지키는 사 남매’일까!           

사 남매, 든든하다. 오른쪽에 뒷모습만 보이는 막내는 걸음마와 동시에 집게질을 시작했다는..!




버려진 쓰레기를 보며 ‘지저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내가 주우면 깨끗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거의 없다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이 갖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덜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적다. 자연이 파괴되는 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연의 파괴를 막고자 애쓰는 사람은 적다. 저자의 삶은 철저히 ‘적은’ 쪽에 속한다. 어찌 보면 비주류. 하지만 반드시 ‘주류’가 되어야 하는 삶.     


나 역시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내 삶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아이에게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때론 섬뜩할 만큼 두려웠다. 내가 마구 쓰는 것들 때문에, 내 아이들은 못 쓰고 사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멈칫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딱 거기까지였다. 두렵고 멈칫했지만, 멈추고 다시 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자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들어서야 했고, 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수가 선택한 삶이 편했고, 그 안에서 누리는 안락함이 좋았다.      


저자와 인연을 맺고 함께 책을 쓰면서 그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자주 부끄러웠고 자주 숨고 싶었다. ‘내가 지나가는 길을 바꾸는 것은 내 삶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는 표지 하단의 문구처럼, 저자는 쓰레기를 줍고 생활을 간소화하면서 삶을 바꾸어나갔다.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했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즐겼다. 가진 것을 내어놓고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듯 살면서도, 충만한 행복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을 떴다.      


‘나도 느끼는 건데……. 나도 생각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천할 용기는 선뜻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와 매주 만나 글을 나누고, 삶을 교류하며 나는 아주 조금씩 달라졌다. 외출할 때는 텀블러를 반드시 챙겼고, 가끔이더라도 땅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웠다. 집에서 물티슈를 치웠고, 행주와 걸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구 사들이던 아이들의 장난감에도 제동을 걸었고, 자주 냉장고를 파먹었다.(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음식 해 먹었다.)     


너무나 사소해서 글로 쓰기도 민망한 일들이지만, 그래도 이 책을 만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본다면 아주 큰 변화다. 저자와 인연을 맺고 그의 책을 읽으며, 생활 속에서 자꾸만 죄책감을 느낀다. 누군가가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덕분에, 나는 참으로 편하게 산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아찔하기도 하다.      


‘나는 아름다워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며 앞장서 나아가는 저자의 뒤를 따라 걷고 싶다. 적어도 내가 지나온 길이 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길을 나의 아이가, 또 나의 아이의 아이가 뒤따라 걸어올 테니, 저자를 따라 조금 더 마음을 쏟고 몸을 움직여 봐야겠다.


           




우리의 첫 쓰레기 줍기는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놀이터에서, 장미가 많이 피어있는 공원에서, 자주 그리고 가끔 쓰레기 줍기 놀이를 했다. 길거리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은 환경미화원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오로지 놀이를 위한 ‘쓰레기 줍기’였다.(40쪽)     

나에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일이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행복하다.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바다에 머물면서 ‘나를 위한 평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다시 내려와야 하는 길을 올라가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48쪽)

물건을 줄인 후, 앞으로의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겠다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던 삶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삶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과도한 소유가 우리에게 행복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많은 것이 불분명했던 삶에 희망의 빛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68쪽)     

내가 사용하는 물건, 내가 버린 쓰레기가 나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니 물건을 함부로 살 수 없었다. ‘비록, 나 하나만’이라도, 최소한 ‘나’라도 바뀌고 싶었다.(106쪽)     

아이의 말에, 나 역시 쓰레기로 가득 찬 세상에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사람이 태어나서 쓰레기를 만들고 가는 일은 있어도, 줄이고 가는 일은 없다’라는 말도 생각났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10년, 20년 후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아이들이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141쪽)     

내가 지나가는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또 굽혀 작은 소망의 씨앗들을 심어 본다. 내 행동의 씨앗들이 바람에 날려 지금보다 깨끗한 세상이 될 것 같은 희망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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