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 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중략) 왜 하필 그 돌연변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의 DNA에 등장했을까?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44쪽)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중략) 농업혁명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중략) 농업혁명은 덫이었다.(129쪽)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 사회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 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 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략)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153쪽)
돈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돈이 유용성을 지닌 채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국은 어떻게 출현했는가. 제국이 어떤 식으로 소수민족의 문화를 말살해가는가. 그 안에는 어떤 신념이 존재하는가.
종교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종교가 사람들의 가치관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가 ‘우리’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246-247쪽)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중략)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원자재다. (중략) 화폐란 상호 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 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이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다. (258쪽)
모든 제국을 검게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278쪽)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 대부분은 늦든 이르든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인 이들 문화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다.(272쪽)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 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298쪽)
과학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자신이 발견한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능력도 없다. 순수한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가령 늘어난 유전학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중략)
한 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388-389쪽)
첫째,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둘째, 농업혁명은 인류의 번영과 발전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셋째,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넷째, 과학은 자본에서 자유로울 때 한 단계 거듭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이었다.
둘째,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더 불행해졌다.
셋째, 이데올로기를 종교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자본에서 독립적인 과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심지어 과학의 발전은 제국과 자본의 뒷받침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로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후기. 신이 된 동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