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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20. 2021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인류의 출발부터 현재까지를 총망라한 『사피엔스』는, 인류 역사를 ‘인지 혁명, 농엽 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총 4부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목차


1부 ‘인지 혁명’에서는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던 인류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다. 인류는 먹이사슬의 중간쯤 존재했으나,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을 기점으로 최정점에 오른다. (‘호모’는 생물을 분류할 때 ‘속’의 개념으로,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종’ 외에 여러 종의 인류가 존재했다. 예를 들면 네안데르탈인 등)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의 인류를 차례로 통합(통합인지, 침탈인지, 학살인지)하며 호모 속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 종이 된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1) 불의 사용, 2) 직립보행으로 인한 도구의 사용 3) 언어의 사용 덕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언어의 사용’은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를 접수하기에 이른다.      



인지 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 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중략) 왜 하필 그 돌연변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의 DNA에 등장했을까?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44쪽)     


제2부 ‘농업혁명’은 인류가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생활 방식을 전환하면서 얻게 된 것과 잃게 된 것들을 서술한다. 2부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은, 여태껏 인류의 생활을 나아지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믿어 왔던 ‘농업의 발달, 정착 생활의 시작’이 어쩌면 인류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린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인류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동물이 가축화되면서 끔찍한 재앙을 맞이했으며, 어떤 동물은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중략) 농업혁명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중략) 농업혁명은 덫이었다.(129쪽)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 사회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 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 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략)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153쪽)          


3부 ‘인류의 통합’은 인류의 역사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방향은 바로 ‘통일(통합)’이다. 인류 통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돈, 제국, 종교’가 있다.  3부는 세 요인에 관한 다음 질문에 답하며, 이들이 인류 통합에 미친 영향을 서술하고 있다.      


돈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돈이 유용성을 지닌 채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국은 어떻게 출현했는가. 제국이 어떤 식으로 소수민족의 문화를 말살해가는가. 그 안에는 어떤 신념이 존재하는가.

종교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종교가 사람들의 가치관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가 ‘우리’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246-247쪽)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중략)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원자재다. (중략) 화폐란 상호 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 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이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다. (258쪽)     

모든 제국을 검게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278쪽)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 대부분은 늦든 이르든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인 이들 문화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다.(272쪽)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 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298쪽)          


4부 ‘과학혁명’에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접수한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이제는 ‘신의 영역’에까지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약 1500년 이전까지 인류는 자신에게 새로운 의학적, 군사적, 경제적 힘을 얻을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세기 동안 인류는 과학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며 능력을 키웠고, 그로써 지구를 완전히 정복했다. (이미 인류의 정복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죽음’마저도 이제는 인류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있다. 특히 4부에서는 그러한 과학혁명이 어떻게 정치(이데올로기), 경제(자본)와 연대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과학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자신이 발견한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능력도 없다. 순수한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가령 늘어난 유전학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중략)
한 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388-389쪽)    




지금껏 대단히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은 책들을 크게 두 가지 기준에서 분류해보자면 ‘지적 영역(머리, 이성)을 자극하는 책’과 ‘심정 영역(마음, 감성)을 자극하는 책’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영역에든 자극이 있는 책이라면 ‘좋은 책 혹은 의미 있는 책’으로 남는다. 반대의 경우에는 ‘의미 없는 책’으로 읽은 기억마저 희미하게 지워진다.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게 의미를 남기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지적 영역을 강타한, ‘아주 좋은 책’이었다. 보통,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만 해도 ‘좋은 책’이라 생각했는데, 『사피엔스』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했다. 읽는 내내 저자의 식견에 놀라고, 통찰에 감탄했다. 이 책의 논리를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류 전체의 역사를 이렇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이제껏 내가 알고 또 믿고 있던 것을 의심하게 했다는 것, 그 두 가지만으로도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가 큰 책이었다.      


『사피엔스』를 읽는 동안, 이제껏 안다믿어온 것들이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던 것들이 책을 읽는 내내 전복되는 경험을 했다. 그중에 네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둘째, 농업혁명은 인류의 번영과 발전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셋째,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넷째, 과학은 자본에서 자유로울 때 한 단계 거듭날 수 있다.     


이 넷은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것이자 믿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독서를 통해 이들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 인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이었다.
둘째,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더 불행해졌다.
셋째, 이데올로기를 종교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자본에서 독립적인 과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심지어 과학의 발전은 제국과 자본의 뒷받침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사피엔스의 논점을 따라가며 어쩐지 조금 겸허해졌다. 부끄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 인간도 동물이라지만, 한 번도 동물과 같은 위치에서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인류는 지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동물이 되었다. 오직 우리 종(사피엔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종을 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생각한다. 자본과 정치의 힘으로 이룩한 과학 기술로, 이제는 지구를 넘어 우주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인류를 멸종의 길로 이끌고 있음을 모른 채.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로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후기. 신이 된 동물 중)



덧붙여.

인식의 전복을 겪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의심해보게 되었다. 그동안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에 작은 조약돌 하나가 던져진 기분이다. 이 조약돌이 일으킨 파장은 한동안 꽤 크게 번질 것 같다. 의심하고 의문스러워하는 사이에 내 인식의 지평이 조금은 더 넓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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