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매일 아침 울고 싶다. 오후엔 좀 나은데 아침은 정말 '전쟁 같은 육아'를 실감한다.
간혹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두 아이가 저희들끼리 잘 놀고, 밥도 딱딱 먹어주기도 하지만 그건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 이벤트이다. 대개는 한두 번의 고성(高聲)은 필수고, 누구 하나는 울음을 터트려야 현관문을 나설 수가 있다. 그 모든 순간을 현명하게 견뎌내는 엄마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힘이 든다.
둘째는 눈 뜨자마자부터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내내 짜증 섞인 말투에 울다 소리 지르기를 반복했다. 첫째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이상을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인 아빠를 붙들고 놀더니, 아빠가 출근하자마자 동생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제 컨디션이 나쁜데 오빠가 놀리고 시비까지 거니 둘째는 더 짜증이 났다. 정말 5초에 한 번씩 다른 일로 싸우고 소리 지르기를 반복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둘을 뜯어말리고는 아침 준비를 했다.
밥 먹기 싫다는 둘째 덕에 이 더운 여름날 아침에 떡국을 끓였다. 그래도 반찬 준비를 덜해도 되니 다행이라 여기며. 아이들은 조리되지 않은 떡국떡을 그대로 먹고 싶다고 했다. 아침부터 기운을 빼고 싶지 않아서 깨끗하게 씻어 딱딱한 떡을 건네주었다. 둘째는 제가 있는 책상까지 "꼭 엄마가" 가지고 오라며 큰 소리를 냈다. 이를 악물고 가져다주었다.
떡국 두 그릇과 식혀 먹을 앞접시 두 개를 차려두고 두 아이를 불렀다. 그제야 둘이서 노느라 신이 난 아이들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 몫까지 끓였어야 하는데, 급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내 몫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겨우 두 아이를 식탁에 앉혀놓고 갓 끓인 떡국을 각자의 앞접시에 덜어 식혀주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얼른 먹고 좋아하는 간식도 먹자고 어르고 달래 두 아이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엄마, 이거 반으로 잘라줘.”
둘째가 먹기엔 아무래도 떡 하나의 크기가 컸다. 평소에는 절대로 자르지 못하게 하기에 그대로 주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먹기가 영 불편한 것 같았다. 음식 가위를 가져와 반으로 잘라주었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안 자를 거야!!! 싫어!!”
아마도 오빠가 그대로 먹는 것을 보고 마음이 변했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의 감정 변화를 알 리 없던 나는 날벼락을 맞았다. 참고 있던 모든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네가 잘라달라고 했잖아! 그래 놓고 갑자기 엄마한테 소리를 왜 지르는 거야!”
둘째는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화가 났겠지. 그 모습을 본 첫째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너무 큰 소리로 말해서 깜짝 놀랐어. 작은 소리로 말해줘.”
맨날 나에게 소리 지르고 짜증을 부리기 일쑤인 첫째가 이성적으로 따지고 들자 어쩐지 더 화가 났다. 아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거칠게 숟가락질을 했다. 반으로 잘린 떡국떡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마음 같아서는 싱크대에 휙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못했다. 선반 위에 놓인 빈 그릇에 담아두고 아이들 곁에 다시 앉았는데 도무지 감정 정리가 되지 않았다.
둘째는 여전히 짜증을 부리며 울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데도 읽어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모른 척하고 싶었다. 매일 아침 내 마음도 너만큼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들어주지 않고 뱉어내고 싶었다. 담아내지 않고 쏟아버리고 싶었다. 둘째는 아무리 짜증을 부려도 내가 입을 닫고 있자, “엄마, 이제 진정했어.”라며 스스로 울음을 그쳤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에게 빨리 사과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도무지 ‘엄마도 소리 질러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마다 너희 둘이 번갈아 가면서 짜증을 부리고, 누군가 한 사람은 꼭 울고 짜증을 부리잖아. 엄마도 힘들어. 엄마 마음은 누구한테 말해? 엄마 마음도 슬퍼!”
아이들이 제대로 알아들을 리 없는 말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벽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소리 내 울지도 못해서 이를 갈며 눈물을 참았다.
“엄마가 화가 났네. 우리끼리 먹고 있자.”
다섯 살 첫째의 너무도 의젓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금살금 안방 베란다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도 들렸다. 곧 턱의 통증이 느껴졌다. 꽉 물고 있던 이에서 힘을 풀었다. 잠시 동안 자세를 고쳐 앉고 마음을 다독였다.
안방 문을 열고 나가자 아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설픈 숟가락질로 떡국을 먹고 있었다. 곁에 앉아 이미 다 식은 떡국을 휘휘 저었다. 남아 있는 것들을 먹이고 식탁을 정리했다.
“얘들아, 엄마도 가끔은 마음이 힘들어. 오늘이 좀 그래. 큰소리 내서 미안해.”
아이들은 씩 웃더니 간식을 실컷 먹고 등원 준비를 했다. 그 난리를 치고도 옷 입을 때 아이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또 짜증을 부리고 옷 투정을 했다. 내 입장에서 난리는 한 번이면 족하다 싶어 다시 아랫니와 윗니를 마주해 힘을 주었다. 잠깐이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는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아이들의 남은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현관문을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은 신이 나서 킥보드를 탔고 자전거를 탔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손끝에 힘을 주어 두 아이를 번갈아 끌어안아 주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이 교실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간 길을 혼자서 돌아오며, 이 아침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까 생각했다. 그 안에서 상처 받을 아이들의 마음과 지쳐갈 내 마음이 겁났다. 문득 아침 식탁에서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해놓고도 낯설었던 그 말.
“엄마 마음은 누구한테 말해?”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아무도 나의 마음을 물어주지 않았다. 마음에 무딘 남편은 아마 자기 마음도 모른 채로 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내 마음을 물어주려면 아마 십 년은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을 만난 지도 오래되었다.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했다. 읽고 쓰며 마음을 돌아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마음 깊은 곳까지 닿지는 않았나 보다.
아, 어쩌면 최근에 읽고 있는 『당신이 옳다』라는 책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어주는 것이 공감의 출발이라는데,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도 공감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내 마음을 누군가의 시간으로 마구 흘려보내고 싶다. 쏟아내고 토해내고 싶다. 그렇게 비워지고 싶다. 가벼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