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런 마음이었구나

by 진아

요즘 들어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는 데 한계가 느껴졌다. 무턱대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같은 감정이 올라와서, 그 순간을 참아내는 게 힘이 들었다. 참다못해 결국 아이와 같이 화를 내고 나면 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무엇이든 말로 해결하는 편이고 정해진 규칙과 질서를 잘 지켰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가끔 아이가 집에서 보이는 행동을 들으시고는 깜짝 놀라셨다. 어린이집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짜증 부리고 화내는 친구들을 말리고 다툼을 중재하는 아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도리어 당황스러웠다.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아이는 같은 반 친구 중에 짜증을 많이 부리고 화를 자주 내는 친구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는 00이가 해님반이 아니라 다른 반이면 좋겠어.”

“왜 그런 생각을 했어?”

“00이는 짜증도 엄청 많이 부리고, 마음대로 안 될 때 소리도 막 질러. 그때 내가 팽이를 갖고 놀고 있었는데 말도 안 하고 뺏어갔어.”

“그렇구나. 그럴 때 사랑이 마음이 어땠는데?”

“불편했어.”

“불편했구나. 엄마가 생각해도 불편했겠다.”

“내가 “00아, 하지 마. 아프니까 하지 마.” 말했는데도 자꾸만 팔을 세게 잡은 적도 있어. 속상해.”

“사랑이 무척 속상했겠네.”


아이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자기의 불편함을 말로 표현도 했지만 친구가 계속 그렇게 행동해서 ‘속상했다’고도 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며, 감정을 그대로 읽어주었다. 그래도 그 순간에 함께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표현하지 않고 말로 풀어보려고 한 모습이 대견했다. 순간, ‘이때다!’ 싶었다. 집에서는 꼭 그 친구처럼 행동하는 아이의 속마음을 묻고 싶었다.


“그런데 사랑아, 엄마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엄청 궁금한 게 있는데.”

“뭐야?”

“00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불편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사랑이는 집에서 엄마나 아빠한테 짜증도 많이 부리고 마음대로 안 될 때 소리도 막 지르잖아. 왜 그러는 거야?”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상황에서 되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랑이는 “몰라! 말 안 해줄 거야!”라며 화제를 전환해버렸다. 이번에도 기대 없이 물었다. 가능하다면 어린이집과 집에서의 행동이 완전히 반대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때마다 꼭 ‘너처럼’ 불편한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엄마, 그런데 말이야. 나도 어린이집에서 짜증 나고 속상할 때 있어.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는 꾹 참는 거야.”

“참는 거야?”

“응, 어린이집에서는 그러면 선생님한테 엄청 무섭게 혼나거든. 나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싫어. 그래서 꾹 참는 거야. 하지만 집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짜증 부리고 소리도 지르는 거야. 집에서도 꾹 참으면 내가 너무 답답해.”

“아, 그렇구나. 사랑이 그러면 어린이집에서는 좀 답답할 때가 있겠네?”

“응. 친구들이 규칙을 안 지키고 막 뺏어가고 그러면 나도 막 짜증 부리고 싶은데 꾹 참으니까 답답해. 그래서 집에 오면 더 짜증이 많이 나.”

”그렇구나. 사랑이가 밖에서 꾹 참았던 걸 집에 오면 마음껏 푸는 거구나.

“응, 집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아이는 알고 있었다. 사회적 공간과 개인적 공간의 차이를. 아이에게 어린이집은 함께 생활하는 곳이고 선생님의 통제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불편을 견디고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와 달리 집은 자기의 공간이고 엄마 아빠의 무한한 사랑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답답함을 참고 견딜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도 괜찮은 곳이었다.


“사랑아, 엄마 지금 너무 기뻐.”

“왜 엄마가 기뻐?”

“사랑이가 무턱대고 짜증 부리고 소리 지를 때 엄마도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거든. 그런데 사랑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어서 지금 엄마 마음이 너무 기뻐.”

“엄마 기뻐?”

“응, 엄청 기뻐.”

“히히.”


아이에게 기쁘다고 말했다. 정말로 기뻤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말로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만큼 기뻤다. 아이가 집에서만큼은 자신을 덜 통제하고 쌓인 감정을 마구 풀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고 또 참다가 참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딱 그만큼, 염려되었다. 앞으로 유치원도 가고 학교도 갈 텐데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불편함을 참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집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감정을 푸는 것은 다섯 살인 딱 지금까지만 허용 가능한 것이었다. 조금 더 현명한 방법을 배워갔으면 싶었다.


“사랑아, 엄마가 사랑이한테 말해주고 싶은 게 딱 두 개 있는데 지금 말해줘도 될까?”

“응.”

“하나는 사랑이가 어린이집에도 너무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사랑이가 불편한 걸 말하지 않고 꾹 참으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 그러면 자꾸만 불편한 상황이 생길 거야. ”

“그런데 짜증 부리고 소리 지르는 건 하면 안 되잖아.”

“그렇지. 그럼 지금 사랑이가 00이 때문에 불편한 것처럼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가 불편해지겠지. 그 대신에 “지금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지금 화가 났어.” 하고 네 마음을 말로 정확하게 말하는 거야. 선생님한테도 “선생님, 지금 이런 일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요. 짜증이 나요.”하고 말로 마음을 전하는 거야.”

“그런데 엄마, 나는 선생님한테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못하겠어.”

“아, 부끄럽구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 불편한 걸 계속 참으면 결국 제일 힘든 사람은 누굴까?”

“나.”

“맞아. 결국 사랑이가 제일 불편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그러니까 사랑이가 말로 표현해야 해. 처음에는 당연히 부끄럽고 쑥스러울 수 있어. 힘들면 엄마랑 같이 그런 표현하는 걸 연습해보자.”

“알았어. 엄마.”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랑이는 선생님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가끔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면, 사랑이는 긍정적인 이야기는 잘하는 편인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다른 방법을 알 수 없어서 엄마와 함께 연습하자고 했다. 표현도 연습해야 하는 거니까. 하나씩 차근차근 연습해서 해보자고.


“그리고 있잖아. 사랑이가 집에서는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는 거 참 좋아. 참고 참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 정말 좋은 거야. 그런데 방법이 조금 다르면 좋겠어.”

“어떻게?”

“지금처럼 집에서 막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부리면 엄마랑 아빠도 마음이 어떨까?”

“음....”

“사랑이가 00이한테 느꼈던 마음이랑 똑같아.”

“불편해.. 싫어.”

“맞아. 엄마 아빠도 그럴 수 있어. 봄이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말로 해보는 거야. 집에서도!”

“그런데 엄마, 집에서는 짜증이 먼저 튀어나와.”

“그래, 그럴 수 있어. 엄마도 가끔 그렇거든. 그러면 요즘 우리가 연습하는 대로 짜증 날 때 혼자서 마음을 진정하도록 해보자. 엄마가 필요하면 곁에서 기다려 줄 수도 있어.”

“방에 들어가서?”

“그래. 방에서 속상하고 답답한 감정들 막 내뱉고 나오는 거야. 엄마가 기다려줄게.”

“소리도 질러도 돼?”

“음, 그럴 땐 이불을 뒤집어쓰고 질러보자. 어때?”

“좋아.”


얼마 전부터 아이가 말도 안 되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이를 안아 방에 데려다주었다. 감정 정리를 할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는 방 안에서 속엣말을 다 쏟아냈다. (밖에 서 있다 보면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렸다. “엄마 미워! 봄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이제부터 엄마랑은 절대 안 놀 거야. 아빠는 내 옆에 오지 마!”) 속에 응어리진 마음들을 마구 쏟아내고 나면 아이는 금세 “엄마, 이제 괜찮아졌어.”라며 품에 안겼다. 그제야 아이와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매번 그러지는 못했다. 나도 감정이 상해서, 마음이 불편해서 내 마음을 다독이느라 아이의 마음을 풀어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왜 집에서 더욱 심하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분명히 알았으니, 아이를 도와야 했다. 지금은 방 안에서 소리 내어 마음을 표현하겠지만, 조금 더 자라면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운동하기와 같은 건강한 표현 방법으로 바뀔 수 있도록 힘껏 도와야 했다.




나 역시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불편함을 참는 게 차라리 더 편했다. 불편하다고 말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해지는 게 싫었다. 그냥 나 한 사람 견디는 것이 모두를 위해 낫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두었다가 마음이 편안한 한두 사람에 풀었다. 주로 그 대상은 가족이었다. 고백하자면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도 아이를 낳고 키우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아이가 나의 그런 면까지 꼭 닮을 줄이야. 이제까지는 나를 닮은 줄도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짜증 부리고 화내는 아이의 마음을 껴안아 주지 못했다. 다 ‘아이 탓’으로 돌리며 함께 화내고 소리 지르기 바빴다.


나를 꼭 닮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옆에서 중간중간 오빠와 엄마의 대화를 비집고 제 얘기를 하던 둘째도 함께 안았다. 두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내가 엄청 큰 사람이 된 것처럼 여겨졌다. 두 생명을 껴안고 살아갈, 남은 생이 어쩐지 전보다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전과 다른 길의 초입에 선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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