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은 쓰기로 했다. 쓰고 싶어졌다.

by 진아

얼마간 글을 쓰지 못했다. 내 글을 쓰지 못한 것뿐 아니라, 남이 쓴 글을 읽지도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작은 마음의 통증이었다. 둘째가 30개월이 되면서 두 아이의 육아는 양육과 훈육, 때론 교육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에만 몰두하던 육아의 범위가 생활의 질서와 행동의 한계를 가르치는 데까지 넘어가더니,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자극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갔다. 그러는 사이 두 아이는 쉴 새 없이 투닥거렸고, 매일 감당해야 할 집안일은 넘쳐났다.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는데, 소리가 들리고 모습이 보였을 땐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무너지는 중이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이 났고, 정신을 차려보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산후우울증을 겪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물론 드문드문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우긴 했어도, 일상생활에 피로를 느낄 만큼 우울을 경험한 날은 없었다. 두 아이 모두 예민한 기질의 아이들이었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너무 행복했다. 스스로를 보기 드물게 복 받은 ‘엄마’라 여겼다.


이번에 마음의 무너짐을 겪으며, 우울이라는 것이 반드시 슬픔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간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무기력에 시달렸고, 자주 분노가 일었다. 나조차 내 모습이 낯설었다.


마음의 통증을 인지할 때쯤 몸의 통증이 찾아왔다. 여기저기 염증이 생겼다. 자주 염증이 생겨 부어오르던 자리가 또 말썽을 부렸다. 잇몸이 아파 음식을 먹는 것이 고역처럼 느껴졌다. 허리 통증과 종아리 통증이 동시에 느껴졌다. 발바닥이 아파 아침에 일어나면 첫걸음을 디딜 때마다 신음이 흘렀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았고, 머리가 자주 지끈거렸다.


몸의 통증은 무기력함을 더욱 부추겼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난 뒤, 혼자 남은 집에서 몇 시간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울기도 했다가 선잠이 들기도 했다가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서야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젖은 솜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억지웃음 끝에 잠깐씩 진짜 웃기도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다시 무기력에 빠졌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니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어쩌면 너무 분명한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만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를 시작했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몸의 근육을 비틀며, 오직 나에게 집중했다. 며칠은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무기력할 틈이 없었다. 온몸의 숨은 근육들이 다 깨어나는 듯했다. 요가로 인해 일상을 괴롭히던 근육통이 가라앉자, 거짓말처럼 얼마간 나를 괴롭히던 몸의 통증들이 잦아들었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내고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할 때면 마음의 통증도 조금 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글이 읽혔다. 여전히 쓰는 것은 괴로웠지만, 남이 쓴 글을 읽는 일이 괴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조금씩 다시 읽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괴로운 동안에도 독서모임과 서평 이벤트 등 때문에 억지로 읽고 있던 책들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좋은 문장이 보였고, 일상의 틈바구니에 간혹 봄바람이 들이쳤다.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쓰고 싶어졌다. 여전히 몸과 마음에 통증이 남아 있지만.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나를 만나고 싶어졌다. 또다시 원인 모를 통증이 삶을 휘감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도 나에게 다시 일어설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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