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다시 써보겠다고 다짐하자마자 아이가 다쳤다.
어젯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주방과 거실을 정리하며 아이들을 재워놓고 책을 읽고 출판 원고를 손보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을 했었다. 설거지와 싱크대 정리까지 끝내 놓고 잠시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안방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장단을 맞추는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뭐가 저렇게 신났을까. 잘 시간 다 되어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을 진정시켜 잘 준비를 하고 동화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 웃음을 멈추기가 못내 아쉬워 쪼그려 앉은 몸을 쉬이 일으키지 못했다. 그때였다.
“아악, 아빠, 아파 아파!!”
“사랑아!! 으악, 피. 피난다. 여보!!!!”
순간이었다. 아이의 비명과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남편의 흥분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안방으로 뛰어가니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놀란 아이를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이미 머리에서부터 목덜미, 어깨까지 붉고 선명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씨. 이거 불안하다고 했잖아. 아. 진짜!!”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자, 평소에는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인 남편의 입에서 “씨”소리가 나왔다. 그만큼 남편은 흥분 상태였다. 아이는 평소에 남편이 자주 눈에 거슬린다고 말하던 콘센트 커버의 모서리에 부딪혀 두피가 찢어졌다. 그 모서리가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계속 이야기했었는데, 나는 그동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었다. 어떻게 놀아도 그곳이 위험할 정도의 각도가 아니라 생각했고, 아이들과 함께 안방에서 놀 때면 일부러 그 앞에 등을 대고 앉아 혹시라도 생길 위험을 막아주면 된다고 여겼다. 남편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미연에 사고를 막지 못한 자신에게 화를 냈고, 자신의 걱정을 기우라 취급하던 나에게도 화를 냈다.
아이는 상처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도 자기 옷에 떨어지는 피와 흥분한 아빠의 목소리에 더욱 사색이 되는 듯했다. 쉬이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상처에서 나는 피도 쉬이 멎지 않았다.
“여보, 자기가 흥분하면 사랑이가 더 놀라잖아. 그만해.”
“사랑아, 괜찮아. 놀다 보면 다칠 수 있어. 괜찮아.”
놀란 가슴이야 내 가슴도 만만치 않았지만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 사이 다행히 피가 멎었고, 아이의 눈물도 진정이 되었다. 놀란 아이를 안아 달래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보았다. 그리 깊은 상처로 보이진 않았지만, 상처 부위가 머리인 데다 찢어진 것은 분명해 보여서 일단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라 둘째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더군다나 잘 시간이 가까우니 나와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첫째도 많이 놀라서인지 나와 동행하길 원했다. 네 식구의 마스크만 겨우 챙겨 모두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2차 병원의 응급실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간호사가 나와서 아이의 열을 쟀다. 37.8도였다. ‘갑자기 열은 왜?’ 싶었다. 아이가 많이 울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열이 나면 무조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곧이어 응급의학과 의사가 나와서는 이런저런 상황을 묻더니 아이의 상처를 살펴본 후 말했다.
"CT와 엑스레이를 찍고, 별 이상 없으면 한 번 집으면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지금 미열이 나서 일단 코로나 검사부터 하시죠.”
남편은 그 사이 이성을 찾아 의사와 면담을 하고는 CT까지는 찍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징징거리는 둘째를 데리고 응급실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간 응급실 바깥 의자에서 대기를 하다 검사실로 오라는 말에 아이를 안고 갔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의자에 앉았다. 좀 아플 수 있다는 의사의 무미건조한 말과 동시에 아이의 콧구멍 깊숙한 곳까지 면봉이 들어갔다 나왔다. 부지불식 간에 일격을 당한 아이는 놀라서 울지도 못했다.
“사랑아, 정말 잘했어. 아팠을 텐데 울지도 않고 어떻게 참았어?”
온갖 말로 아이에게 칭찬을 퍼부었다. 아이는 울 타이밍을 놓쳤는지, 정말로 아플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그랬는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품에 안겨왔다.
다시 대기실에서 한참을 대기하다, 겨우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를 기다리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도 또 한참을 지나 아이의 이름이 불렸다.
응급실 안에 있는 처치실로 갔다. 의사는 아이의 상처를 소독하고, 예고도 없이 스테인플러로 아이의 상처부위를 한 번 탁, 집었다. 순간 너무 아팠는지 응급실에 온 지 두 시간 반 만에 아이는 첫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잘 참았다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 데리고 나오니 이번엔 수납과 약 처방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둘째는 쏟아지는 잠과 싸우느라 너무 힘들어했다.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모두 오빠에게 뺏긴 채, 잠과의 사투까지 벌여야 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지. 안 그래도 촉각에 예민해서 잠들기 전엔 꼭 옷 투정, 잠자리 투정을 하는 아이인데 마스크까지 끼고 열두 시 가까운 시간까지 불편한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두 아이를 차에 태워 집에 오니 시곗바늘이 열두 시를 갓 지나, 날이 바뀌어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열 시 반이면 잠드는 아이들이라, 두 아이 모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제야 온몸에 긴장이 풀렸는지 여기저기가 쑤셨다. 16킬로의 아이를 몇 시간 동안 안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나간다 한들 책을 읽을 수도 원고를 볼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하니 오히려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많이 놀랐던 남편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고, 두 아이도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양쪽 옆에 있는 두 아이의 이마를 번갈아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음으로 말했다.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우리 사랑이 많이 놀랐지. 오늘 정말 고생했어. 고마워. 아들.’
‘오빠 치료 다 받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고생했지. 우리 봄이도 다 컸네. 고마워. 딸.’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아이들에게 아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어쩌면 기적이라고. 그 평온을 당연하다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일상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은 다짐, 깨달음은 깨달음일 뿐. 오늘 또 떼를 부리는 둘째와 한바탕 하고, 뜻대로 안 된다고 눈을 흘기는 첫째에게 함께 눈을 흘겼다.
나란 엄마, 멀었다 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