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또 한 뼘 자라 있었다.

by 진아

엄마, 오늘 바깥놀이를 갔는데 까미(어린이집에서 키우던 토끼, 하늘나라로 간지 벌써 1년이 지났다)가 보고 싶었어.

그래? 까미 생각이 났구나.

응. 근데 까미는 하늘나라에 갔지? 어떻게 갔어? 비행기 탔어?

아니, 그건 아니야. 까미의 몸은 땅에 묻혔고 마음은 하늘로 날아갔어.

묻혀? 그게 무슨 말이야?

까미가 많이 아파서 더 이상은 살 수 없게 되었거든.

죽었어?

응. 맞아. 죽어서 까미 몸은 땅에 묻혔고, 마음은 하늘로 갔어. 그래서 까미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하는 거야.

엄마 할아버지도 하늘나라에 갔잖아. 그럼 까미 만났을까?

음..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엄마 할아버지는 까미를 모르시니까.

그럼 엄마 할아버지도 죽었어?

응. 맞아. 돌아가셨어.

왜 돌아가셨다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원래 하늘에서 살았어?

음..

그럼 나도 하늘에서 왔어?

그럴지도 모르겠네. 엄마는 하늘이 엄마에게 너를 선물해줬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어떻게 생겨났어?

아빠 씨앗과 엄마 씨앗이 만나서 네가 생겨났지.

씨앗이 어디에서 만났어?

엄마 뱃속에서 만나서 자랐어.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던 때 이야기해줄 수 있어?

그럼. 네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땐..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콩알만 하던 네가 자라 팔과 다리, 얼굴과 이목구비, 손가락 발가락이 생기던 순간을. 잠을 깨울 만큼 강렬하던 태동의 감촉을.


나와 아이, 누가 먼저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자꾸 더 얘기해달라는데 내가 너무 졸려서 말을 하다 멈춘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먼저 잠든 것 같아 같이 잠들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토끼 까미 이야기에서 시작해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저의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그리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죽음과 탄생까지 연결되었다.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에 그런 대화를 나눌 만큼 아이는 자라 있었다.


떠난 무언가를 그리워할 줄 아는 아이로.

죽음을 여행처럼 여기는 아이로.

돌아가셨다는 말에서 죽음과 탄생을 연결하는 아이로.


근래 들어 아이와 감정적 마찰이 많았다. 자아가 폭발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5세 아이와 원리원칙주의자인 것도 모자라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38세 어미는 매 순간 부딪혔고, 자주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조금, 아니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이만큼 자란 걸 느끼는 순간이 오니, 그동안 아이도 어미도 성장통을 앓느라 그렇게 힘들었구나 싶다.


자라는 모든 순간은, 그 마디마디는 어쩔 수 없이 아픈 거니까.

나무에 새 가지 나고 그 끝에서 꽃이 피려면, 찢어지고 갈라지는 고통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는 그렇게 아픈 순간을 지나며, 오늘도 조금씩 함께 자라는 중일 테니까.





keyword